런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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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록은 손안에서 고양이의 숨이 빠져나가던 순간을 더듬어 보았다. 작은 뼈가 으스러지는 감각과 함께 헐떡거리던 몸에서 힘이 쭉 풀렸다. 그렇게 다시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소년은 몸이 식기 전에 무딘 칼날로 재빨리 가죽을 열고 그 안에 든 것을 차근차근 펼쳤다. 직전까지 살아 숨 쉬던 핏덩이를 이루는 미세하고 치밀한 구조를 할 수 있는 한 가장 작은 단위로 조각조각 해체했다.
고양이가 그저 고양이었을 때는 소년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것은 좀더 진화하고 나아간 어떤 것, 서슬 퍼런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복잡하고 광대하고 눈앞에서 번쩍번쩍 빛을 피워올리는, 죽은 퍼즐.
그 순간에는 세상의 다른 모든 부분은 암전되고 그것과 자신만 남았다. 
몸속에서 환하게 빛이 켜지는 것 같았다.

파록의 회상 속에서, 기쁨은 늘 짧게 끝났다. 그 환희의 썰물이 지나면, 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뺨을 후려치던 순간이 뒤따라왔다. 폭력의 순간에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고요해졌다. 소년은 반항하지 않았다. 자기 안에 든 것이 조금이라도 새어나갈까 두려워, 맞을 때 있는 힘껏 숨을 참는 버릇은 손쉽게 습관이 되었다.

“대답해라. 왜 고양이를 해쳤지?”

아버지는 용납이 없는 사람이었다. 신사답게, 더듬지 않고 제대로 자기 말을 해야만 상대해 주었다. 파록은 많은 소년이 그렇듯 그의 가르침을 경전처럼 여겼다.
소년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 안에 든 걸 보고 싶었어요.”

그만큼 어렸을 때, 파록은 언제나 진심을 말했다. 그것이 그가 배운 올바른 규칙이었건만,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그의 대답을 들으면 늘 불같이 화를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그 고지식한 남자가 당황을 표출하는 방식이었다. 침실에서 부모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아버지는 그를 경멸하면서 두려워했다. 자기 자식의 껍질 안에 어떤 불가해한 것, 사납지 않지만 해롭고 불길한 것이 새끼를 까고 아이를 지워 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 애를 가지기도 전에 도둑맞은 것 같다고.
글쎄다.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어디로 떠난 적이 없는데. 왜 다들 잃어버린 것처럼 구는 걸까.
잃어버리는 건 무슨 기분일까.
무슨 기분일까?

“파록. 왜 아즈만을 계단에서 밀었지? 그 애는 하마터면 목이 부러질 뻔했어.”
“아즈만은 내가 죽으면 슬플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나도… 그 애가 떠나가는 게 무슨 느낌일지 궁금했어요.”

그날 파록은 한쪽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맞았다. 아즈만은 그날 이후 세 살 터울인 형에게 다시는 말을 걸지 않았다.
예상하던 방식은 아니어도 동생을 잃어버린 셈이었다. 파록은 상실의 슬픔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그게 무슨 느낌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아는 것을 나는 영원히 모르는 걸까? 아무리 애를 써도 불가능했다. 모든 것이 난해했다. 서로 다른 공기를 숨 쉬는 사람들처럼 닿지 않았다.
그때부터 파록은 차츰차츰 괴리를 학습했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규칙 자체가 약간은 반칙이라는 사실을, 수십 년의 폭력 끝에 기어코 배워냈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
그 규칙을 지키는 한, 아버지는 파록을 눈감아주었다. 늘 겁에 질렸던 어머니의 눈에도 안도감이 서렸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주변의 기대에 맞추어 나갔다. 그 지난한 과정에 비하면 공부는 쉬웠다. 가족들의 불안한 시선을 되짚으며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의중을 더듬어 가는 것보다는, 훨씬 간단했다.
아버지는 사람을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네가 나고 자란 환경, 건전한 교육과 따스한 식사 그리고 부드러운 이부자리 같은, 모든 감사한 것들에 대한 의무라고.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런던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첫 번째 카데바를 만졌다. 용액 처리된 사람의 시신이 깨끗하게 닦여 누워 있었다.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 죽은 회색 피부에 칼을 대자 먼 옛날 번쩍 켜졌던 불이 희미하게 깜빡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안개 속 저 멀리서 찾은 등대처럼 멀지만, 놓칠 수 없는 빛.
사람의 물리적인 내면은 사람의 외면과 비교도 되지 않게 아름다웠다. 파록은 사람의 마음을 영원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슴을 갈랐다. 그러면 근육과 혈관으로 뒤덮인 정원, 주렁주렁 열린 지혜의 열매가 보였다. 그제야, 그렇게 산산이 작은 단위로 분해되고 나서야 기어코 사람은 파록이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 사람을 내려놓는 그 행위에 지독한 매혹을 느꼈다.
파록 하자리는 솜씨 좋은 의사였다. 의도는 추했지만 기술과 재능이 있었고, 그는 언제나 아버지가 정한 규칙을 지켜왔다. 호르미즈드는 현명했다. 그 규칙은 세상이 그를 참아주도록 만드는 최후의 방파제 같은 것이었다.
규칙이 없었다면 이미 무분별하게 탐구한 끝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말았으리라. 아, 인간. 인간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모자랐다. 선천적으로 맛을 모르던 자가 깨달은 미식이었다. 그가 눈 뜨고도 읽지 못했던 수만 가지 이야기가 얇은 가죽과 근막을 너머에 두고 켜켜이 쌓여 있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파록의 내면에서 얕은 호기심이 자라났다.
내 심장은 어떤 모습일까.
아즈만이 저주하던 것처럼 추하고 역겹고 지저분할까. 새까만 타르 덩어리일까?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일까? 호르미즈드 하자리로부터 자식을 빼앗아 간 어둠이 심장 대신 웃고 있을까?


*


그는 지금껏 루이즈 퐁소에 관해 깊은 생각을 쏟아본 적 없었다. 그녀에 관해 아는 것이라곤 가끔 곤란할 정도로 사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아무리 소독약을 부어 닦아내도 사라지지 않는 오래된 것들의 냄새가 난다는 것뿐. 고대의 묘지와 인동 덩굴. 오늘도 그랬다. 마녀는 실 한 올 걸치지 않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시대와 불화했다. 파록이 세상에 안착하려고 버둥거리는 내내 헬륨 풍선처럼 붕 뜬다면, 그녀는 제멋대로 어긋났다.
옛날이었다면 이렇게 담담하게 평가하지만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일이 부러워하기에는 그도 이제 제법 나이가 든 혈족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빚 청산이었다. 파록이 제멋대로 그녀를 들여다봤으므로 이 트레미어도 같은 것을 원했다.

“절대 물지 마.”

명령과 달리 창백한 손이 가까워졌다. 생살이 갈리는 동안 루이즈는 제 손을 그의 입에 물렸다. 살갗에 이빨을 박고 힘껏 흠향하면 환한 기쁨이 죽은 신경을 태우겠지만, 인내는 금과 같았다. 그는 정말로 잘 참았다. 아플 때 숨을 참는 것처럼 비명을 내리눌렀다. 고통에 약해지면 무언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소년일 적부터 하던 불길한 상상은 죽은 뒤에도 여전했다.

“착하지.”

나는요, 전혀 착하지 않아요. 그저 참고 참아서 참는 것이 내가 되었을 뿐.
고통이 전신의 모든 감각을 짓누르고 둔하게 했다. 파록은 몸 그 자체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이어 할 수 없었다. 칙칙하게 죽은 내장 사이로 손이 파고들고 헤집었다. 대장. 비장. 위. 짚어주면서도 머릿속에 배 속이 그려지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모험을 즐기던 루이즈의 손이 기어코 그의 심장을 움켜잡았다.

“이건 뭐야?”

파록이 신음했다.

“심…장이요.”

루이즈는 장난치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의 심장을 제멋대로 천천히 쥐었다가 놓으며 생명 활동을 흉내 냈다. 뱀파이어의 비테가 죽은 심장을 타고 흐르는 건 살아있는 것들을 향한 우스꽝스러운 풍자극 같았다. 늘 우습다고 생각했다. 파록은 자신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의학적으로 자신에게 수십 번 수백 번 넘게 단순 명징한 사망 선고를 내릴 수 있었다. 그럴 권위가 있었고 그것을 기꺼이 행사했다. 그런데. 
식은 나무토막 같던 그녀의 손가락에 서서히 피가 돌며 열이 올랐다. 조롱하듯 움직이는 손이 잔인할 정도로 따뜻했다.

“박동이 느껴져?”

파록은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심장을 상상만 하다가 죽는다. 하지만 루이즈의 따뜻한 손이 배 속을 헤집고 더듬어 그 윤곽을 만지자 비로소 심장과 그 바깥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평범한, 죽은, 심장.
그녀의 목소리, 마주친 눈빛에는 잔인한 희열이 감돌았다.

“네가 이걸 왜 좋아했는지 알겠다.”
“저흰 너무… 달라요. 전 전혀 그런 의미로 좋아한 게 아니에요.”

그렇게 어린애 장난처럼. 나쁜 짓을 하듯이. 그랬을 리가 없다. 나는 그저 이해하려고. 이해하려고. 아픔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닌가? 맞았나? 그저 장난이었나? 모래탑을 쌓고 다시 무너뜨리듯이. 유아적인 쾌감을 충족하려고 그랬던 걸까? 그건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야. 좋은 행동도…….

“난 좋은데. 따뜻하지 않아?”

기분이 이상했다. 헤집어진 배 속이 울렁거렸다. 의지와 다르게 느리게 박동하는 심장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뜨거웠다. 이건 아픔이라기보다……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감각에 목이 메었다. 그는 날뛰지 않기 위해 애꿎은 욕조의 틀만 쥐어짰다.

“생각보다 얌전하네.”
“빚이라고… 하셨으니까요.”

이해할 수 없어도 규칙은 늘 규칙이었다. 한숨 같은 대꾸에 그녀가 실망한 듯한 눈길을 보냈다.

“그것뿐이야?”

그녀는 무슨 대답을 바라는 걸까? 파록은 정답을 맞히는 게임은 싫었다. 늘 지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제게 바라는 게 있으면 그냥… 말씀하세요. 그게 쉬우니까.”

그 덕에 다소 김빠지는 대답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바라는 것이 따로 있었다. 루이즈가 그의 갈라진 가슴에서 손을 빼냈다.

“그럼, 괜찮지?”

그녀는 그를 마실 것이다. 
혈관에 입술이 닿았다. 파록은 순종적으로 눈을 감았다.

“예.”

건조한 입술이 기다란 목을 누르고 뒤이어 날카로운 송곳니가 파고들었다.
그의 정신은 견디기 힘든 아픔으로 인해 몸에 바짝 가까이 붙어 있었기에, 직격타였다. 아릿한 쾌감이 죽은 신경을 태우고 내달렸다. 없는 숨이 목에 턱 걸리는 기분이었다. 파헤쳐지는 신비. 점멸하는 개인의 역사. 죽은 남자가 나긋나긋한 침묵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어쩌면 조금쯤은 알겠다. 어쩌면. 내가 영원히 해체하고 탐구할 수 없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남의 손을 빌려야만 한다. 모두가 그렇다. 그래서 존재에게는 바깥이, 타인이 필요한 것이다. 아즈만도 그랬을 거야. 호르미즈드도, 젬마도 그렇겠지. 사람들은 다들 그래. 그럼 내게도 남이 필요한 걸까? 그럼 나도 사람이었던 걸까? 그럴 수 있었을까? 내 심장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묻고 싶다.
두서없는 생각이 벼락같이 내리꽂히다가 타들어 가서 사라졌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달콤한 환희가 전신을 휘감았다.
파록은 자신이 환하게 켜지는 순간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그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헐떡거렸다. 의미 없는 몸짓인 줄 알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가누기 힘들었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된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나인 감각. 경계가 흐물흐물하게 흩어지는 감각. 몸속 깊은 곳이 단순하고 동물적인 갈구로 가득 찼다.
나를, 전부, 마셔줘. 나의 기쁨을. 공허감을. 전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금세 식어버린 손이 갈라진 상처 위를 기고, 커튼처럼 흘러내렸던 새까만 머리카락이 물러났을 때, 그는 조금쯤 빈 그릇이 된 기분이었다.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루이즈.

“제가… 무슨 기분인지 아시겠어요?”

익사할 것 같은 어둠 너머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런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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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년은 모든 소년이 그러하듯 아버지를 사랑한다.
단 한 번도 그를 미워해 본 적 없다. 그것은 어쩐지 불경하고 위험한 짓처럼 느껴졌다. 소년은 자신이 가진 모든 욕구보다도 앞서서 그에게 제 존재를 용납받고 싶었다. 그때는 그래야 삶이라는 게 비로소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 같았다.
호르미즈드의 장례식은 조장(鳥葬)이었다. 그가 떠나고 나서도, 파록은 영원히 아버지의 그림자 아래 살았다. 그의 규칙 안에서만 자신의 존재가 용인받을 수 있다고 느꼈다. 영혼이 죽은 자의 세상으로 떠나지 못하고 그들을 이 땅에 묶어놓는 게 족쇄shatter라면, 아버지를 파록의 안에 묶어놓는 것은 일생을 통해 일궈온 규칙 그 자체였다.
규칙이야말로 또 다른 족쇄였다. 영혼은 이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지만, 파록은 언제나 호르미즈드를 느낀다. 자신을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만들어 낸 한 인간을.
그 이후 지난한 삶과 삶 아닌 시간을 보내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소년은 언제나 같은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2
 
‘태양을 숭상하는 것과 이런 원시적인 의식 사이에 대체 무슨 관계가 있지?’
 
물론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다. 의식이라는 것은 원래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행위니까. 그러니까 단순하고 고무적일수록 효과가 좋다. 자신의 차례가 되어 눈앞에 잔이 들이밀어졌을 때 약간은 곤란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파록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보신에 대한 욕구보다도 더 강한, 어디에든 속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하지만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예상 밖이었다. 이리저리 어색하게 피하던 것도 잠시, 결국에는 입술이 겹치고, 몸이 뻣뻣하게 경직했다. 가면 밑, 마르게 버석거리는 입술 너머로 피가 흘러들어왔다.
파록은 역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루이즈가 사랑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 이런 행위에는 몸속이 환히 켜지는 느낌도, 일말의 고양감도 없다. 느껴지는 건 물성으로 추락하는 감각뿐이다. 살과 땀과 가죽이 누구랄 것 없이 뒤엉켰다. 육신이 너울거리는 파도처럼 꿈틀거리고, 입안에서 뒤섞인 피의 맛에서부터 온갖 감정의 편린들이 밀려 들어와 어지럽다.
파록은 감각이 지나치게 곤두서 있다고 느낀다. 압도적인 감각 속에서 인간 개개인은 보이지 않게 된다. 그저 덩어리째 그린 유화 물감 그림처럼, 되는대로 뭉친 살덩이들처럼 느껴진다. 국소마취제가 섞인 차갑게 잠든 사람들의 피가 아니라, 생생하게 깨어 흥분하고 날뛰는 갖은 인간의 피가 혈관에 들어와 날뛰었다. 그는 그 감각이 괴롭다. 적막 속에서만 존재하다가 갑자기 거리 한복판에 내던져진 것 같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같다.
파록은 자신의 곁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육체로 전락하는 자신에게 소스라친다.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빠져나오는 것 같은 해리 반응이다. 파록은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다. 몸이 기어코 오롯한 몸의 주인이 되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하지만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보이지 않는 족쇄에 꽉 묶여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다. 약간의 움직임만으로 사람들이 찢어지고 망가지고 피가 든 고기 주머니처럼 터져버리는 환상을 본다. 이미 멎고 없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공포다.
그가 얼어붙은 동안에도 살점의 파도는 계속 그를 정념의 해안으로 밀어간다. 출처 모를 손길과 입맞춤이 아무렇게나 내던져지고 뒤섞인다. 닿고 싶지 않다. 젖은 인간의 육체가 맨살에 겹치는 느낌은 끔찍하다는 말로도 형용하기 힘들다. 몸 위로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다. 위생 감각과 강박이 그 자신의 적이 되어 고문한다. 그럼에도 그는 어설픈 저항조차 그만둔다. 그저 온순하게 견딘다. 참는 것이 내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거절을 모르기 때문이다. 양 떼 사이에서 입을 꽉 다물고 송곳니를 감추면 아무도 자신이 괴물이라 알아채지 않으리라고, 그렇게 믿는 어린 짐승.
그렇게까지, 그렇게까지 해야만 사람들은 그를 견뎌줄 마음을 먹는다.
전부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3
 
저주받은 이빨이 목을 뚫고 들어갔을 때도 청년의 비뚤어진 목에서는 그륵거리는 소리만 나왔다. 목이 부러진 고통이 헤카타의 송곳니가 불러일으키는 끔찍한 고통마저 잊게 만든 것이었다. 단 한 번도 안타까워한 적이 없건만, 지금은 자신이 죽어가는 젊은이에게 흡혈의 얕은 쾌감조차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약간은 슬펐다. 청년의 피에서는 공포심이 느껴졌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인간의 생생한 두려움, 그 감정이 텅 빈 남자에게로 훅 옮아갔다.
쭈욱, 쉼 없이 피를 빨아들이고 목울대가 움직거릴 때마다 몸속이 따뜻한 피로 가득 찼다. 죽어가는 열기가 몸 전체를 데우고 흘렀다. 파록은 이 선을 넘어본 적이 없었다. 늘 어딘가 적당한 곳에서 그만뒀다. 하지만 오늘은 소년을 완전히 텅 비웠다.
몸에 닿은 손이 멎은 맥을 재고, 눈은 힐끔 손목시계를 보았다. ‘n월 n일 nn시 nn분, 사망했습니다.’ 그는 질릴 만치 익숙한 선고를 마음속으로 내린다.
그리고 자기 팔에 상처를 내, 피를 청년의 입술로 흘려보냈다.
 
“파록 씨, 지금 뭘 하는 거예요?”
 
그제야 그녀가 휙 돌아보았다.
바이올렛이, 아니, 정확히는 그 너머의 짐승이 물었다. 입 안이 썼다. 파록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모든 사인이 명징했건만, 파록은 그녀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병원으로 그녀를 태워다준 것이었는데. 그리하여 바이올렛은 결국 자기의 복수를 이뤘다. 병실에서 퇴원하려던 청년의 목을 간단히 부러뜨림으로써.
입이 열 개라도 제 잘못을 덮을 수는 없었다.
파록은 그 집안이 병원에 진 빚을 알고 있다. 그 청년을 그가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어니스트 피셔로부터 부탁을 받은 뒤 의례상 간단한 조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 가족에게 더는 기댈 곳이 없다는 것도 알았고, 그는 결국 젊은이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가엾은 젊은이는 자기 목이 부러질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되살아날 것이다.
괴물로서.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될 거야.’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렇게까지 한다고 해서, 어니스트 피셔가 자신이 약속을 지켰다고 기뻐할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파록은 그저 남의 실수를 덮어 더 큰 실수로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어렴풋이 자각하고 있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다만 바이올렛 다크우드의 슬픔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듯 이번에는 청년에게 책임감을 느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할 뿐이다. 성의껏, 사람들을, 돕는다. 그것이 그가 존재를 용인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간만에 머리가 또렷한 덕분일까. 아니면 직전 삼킨 청년의 생생한 피가 입을 움직이게 만든 것일까. 시체에게 제 피를 먹이면서, 잘하지도 못하는 거짓말이 입 밖으로 술술 흘러나왔다.
 
“생각해 보세요. 그가 살아남는 게 어니스트 씨에게는 더 큰 고통일 겁니다.”
 
아니야. 파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파록은 피를 삼키는 괴물의 삶이 이전의 삶과 아주 다르다고 느끼지 않았다. 인생은 영원히 스스로 영원히 감독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떤 생존 본능과도 같은 감각이 그를 움직였다.
그리고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잘 읽었다.
 
“당신이,”
 
사회적 신호와 우아한 태도가 감추고 있던 나직한 경멸이 한 꺼풀 벗겨져 드러났다.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이 유독하고 아름다웠다.
 
“당신이 남의 감정에 관해 뭘 안다고. 고작해야 흉내만 내는 주제에.”
 
바이올렛이 휙 돌아섰다. 그리고 직전과는 달리 너무나 차분하게 멀어지는 발소리.
그 매서운 말이 파록에게 칼이 되어 박혔다. 한순간 영혼에 금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금이 벌어진 곳에서 벌레가 기어나와 스멀스멀 몸 위를 쏘다녔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다 알면서 그저 참아주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에 왜 새삼스럽게 베이는 걸까? 그저 알고 있었던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했을 뿐인데.
그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를 참아준다.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4
 
“개새끼.”
 
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둔탁한 통각이 덮쳤다. 파록은 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졌다. 미움받는 일에는 익숙했다. 자신이 덜 되어 먹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람 닮은 것을 싫어한다. 그의 흉내는 완벽하지 못해서 언제나 불쾌한 골짜기를 건드린다.
파록 하자리는 슬픔이 무슨 느낌인지는 안다. 몇 번이고 피에 섞인 그 맛을 음미한 적이 있다. 그러니 익숙해야만 하는데. 오늘따라 감각이 지나치게 생생해서 어지럽다. 어쩌면 아직도 몸속을 돌고 있는 청년의 피 때문이다. 번쩍번쩍 땀에 젖은 살갗을 빛내던 육신들의 향연 때문이다. 얻어맞은 자리에 울혈이 고이고 인간처럼 신경이 탄다. 다시 한번 주먹이 꽂히자 눈앞이 번쩍거린다.
전에는 비슷한 일이 일어나도 거대한 껍질을 두른 것처럼 담담할 수 있었는데. 모든 일이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멀어 보였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힘겹고 불쾌한 기분이 드는 걸까. 참으면 그만이다.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참아주듯 그저 이 일도 참으면 그만인데.
 
“이 새끼야. 무슨 소리라도 내봐. 어?”
 
아무리 그런 말을 들은들, 파록은 주박에 걸린 사람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소리 내지 마라.’
 
그에게는 언제나 엄격한 호르미즈드의 족쇄가 먼저다.
어니스트는 몇 번이고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굳은살 박인 손이 거침없이 제 앞에 선 것을 파괴하려고 했다. 파록은 조금도 반항하지 않았다. 그런 짓을 해 봤자 화풀이하는 시간이 길어질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니스트 피셔의 손에는 하수구의 물비린내가 배어 있다. 아무리 문질러 닦아도 그랬다. 소독약이 그의 손마디에 스몄듯 그 남자의 시체 몸에도 살아온 세상의 흔적이 남았다.
파록은 그 손이 싫었다. 그 손이 자신에게 닿는 게 싫었다. 어쩌면 노스페라투의 저주 때문일까? 파록은 병원에서 일하며 신체 파편이 날아가고 전신이 불에 타고 몸의 구멍에서 끈적한 진액과 고름을 쏟으며 사는 자들을 수없이 보았다. 그들이 더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고통받는 몸은 그저 기관일 뿐이었고 파록은 그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 남자는…… 이따금 참기 힘들 정도로 불결한 기분을 선사했다.
지금까지는 이유를 잘 몰랐다. 그러나 이 순간 시퍼렇게 증오를 태우는 눈을 보고 있자니, 나직한 깨달음이 몰려왔다.
 
 
그가 괴물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괴물이 불러일으키는 끔찍한 공격성을 밖으로 드러내면서 아무것도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이, 날것으로 날뛰는 분풀이가 무엇을 불러올지 무엇을 파괴할지,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감정에 오롯이 매몰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이 견딜 수 없이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공들여 조각조각 망가진 괴물. 너도 저렇게 망가진 괴물이 될 수 있었다. 호르미즈드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괴물임을 숨기지 않는 괴물 말이다. 날뛰는 것 외에는 자신을 증명하는 길조차 모르는 짐승 말이다. 내가 그것을 막았다.
아, 또다. 재차 살가죽 위로 벌레가 기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역겨움, 측은지심, 혐오감, 그리고 깊은 곳에 자리한 조금쯤은 부럽다는 생각들. 모든 게 텅 빈 자리에서 뒤엉켜 타르 곤죽처럼 변해버린다. 파록은 이유 모를 수치심을 느낀다. 그대로 이빨이 살가죽을 뚫고 짓누른다. 쾌감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다시 몸이 몸이 된다. 읽지 마. 허락한 적 없어. 날 보지 마. 애원해도 끝나지 않았다. 그 순간의 감각이 너무 끔찍해서 비명을 지를 수조차 없었다.
 
 
 
5
 
아버지의 장례식은 조장이었다. 어두운 밤 까마득히 높은 곳에 얌전히 팔을 모으고 누워 있을 호르미즈드를 상상하며, 하루하루 조금씩 뜯어먹힐 그의 시체를 상상하며. 파록은 나는 결코 아버지와 같은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어떤 얼룩진 새가 나를 장사 지내줄까. 어떤 괴물이 기어코 부리를 휘둘러 내 흉금에 상처를 내고 뼈를 갉을까.
파록은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일으켰다. 두들겨 맞아 욱신거리는 육신을 고치려 피를 돌리고 있자니 다 터진 입술 사이로 자꾸만 힘겨운 웃음이, 웃음이 삐져나왔다.
어느 순간 피처럼 입 안에 고인 말이 공허한 뱃속을 맴돌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그 애의 아버지는 나야, 당신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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