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 니알라토텝의 가면들 캠페인 탐사자 시점으로 캠페인 내용을 기록한 글입니다.
저의 기록용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스포일러입니다!

현재 플레이 중인데 마스터가 아니고/아직 엔딩을 안 봤다면
탁별로 정보량이 다르니 유의하세요.

케냐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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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10.9



 케냐에서 확인할 일의 목록을 정리해둔다. 

  • 칼라일 탐사대 관련 기사: 애버데어 숲 근처 백인 학살. 칼라일 탐사대가 사파리 관광을 한다고 떠나, 나이로비 북서쪽 대지구대 탐험 예정.
  • 잭슨 엘리어스가 남긴 나이로비 메모: 존스턴 케냐타라는 이름. 검은 바람의 신에게 저주를 받은 곳, 피투성이 혀 사교 집단, 산의 본부.
  •  잭슨 엘리어스가 질문한 사람들의 목록: “샘 마리가, 기차역”, 네빌 저민, 스타렛 선생, 셀커크 중위, 엔디콧 대령.
  • 케냐 몸바사 칼린디니 항구 아자 싱 앞으로 가는 소포.


 이른 시각 몸바사에 도착했다. 태양이 선명한 채도로 내리쬐었고 그을린 공기에서는 짭조름한 냄새가 났다. 인도양의 파도가 밭은 숨을 내쉬며 흰 모래밭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드는 동안 먼저 도착한 배들이 항구에 매여 미적거렸다. 사람들은 온갖 말로 떠들며 적갈색으로 지어진 낮은 건물들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케냐는 사파리 목적의 관광객이 많아 비교적 총기에 관대했기에 큰 문제 없이 세관을 통과할 수 있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배에서 내려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때는 묵은 후회와 잘못을 뒤로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오묘한 착각에 젖곤 하는데, 실비아는 큰 감흥이 없었다.
 실비아 펠튼은 중년의 딜레당트로 내가 호주에서 자리를 비운 동안 프리스비의 연락을 받고 합류했다. 과거에 우리와 비슷한 사건을 겪었다고만 들었는데, 사실이라면 얌전히 손을 씻고 물러나 쉬다가 다시 현장에 불려온 셈이었다. 나는 은퇴한 군인 중에 이런 부류를 몇 보았는데 제 안에 자기만의 성(城)이 있지만 매사에 무뚝뚝하고 퉁명스럽다.
 첫날은 몸바사의 캐슬 호텔에 묵었다. 실비아가 최고의 숙소를 고집해서 얼떨결에 그렇게 되었다. 불안정하고 축축한 배 위에서 한 달여를 보내다 깨끗한 시트 위에 누우니 그대로 침대에 영혼을 빼앗길까 봐 겁이 날 지경이었다.
 얼마간 기력을 회복한 뒤 아자 싱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그는 영국령 케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도인 수출입업자로, 몸바사에 자기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현재 인도로 출장을 간 상태로 6주 뒤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한밤중에 그의 사무실에 몰래 잠입했으나 큰 수확은 없었다. 사무실 금고에는 돈과 함께 잡다한 송장, 흰 가루(설탕과 제습제), 힌두스탄어로 쓰인 장부가 있었다.

 

 

 

1925.10.10


 몸바사에서 시간을 오래 지체할 수 없었기에 새벽같이 우간다 레일웨이를 타고 나이로비로 향했다. 이렇게 일찍 출발해도 밤이 늦어서야 도착할 예정이었다. 우간다 레일웨이는 몸바사에서 출발하여 북서쪽으로 진로를 펼치는 긴 철도다. 나는 프리스비와 함께 삼등칸으로 갔고 실비아는 일등칸에 타느라 일행이 잠시 갈라졌다.
 덜컹거리는 금속 소음, 긴 경적과 함께 기차가 출발하자 아침 햇살이 낀 창밖으로 아프리카가 펼쳐졌다. 떠날 때는 푸른 해안선 위로 부서지는 햇살을 볼 수 있었다. 자료를 정리하고 잡담을 나누고 담배를 피우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소금기 머금은 공기가 점점 멀어지면서 이내 잿빛 바오밥 나무와 가시 많은 아카시아, 누군가 손으로 가볍게 쥐었다 놓은 것 같은 모양의 이름 모를 관목이 드문드문 서 있는 넓은 초원이 나타났다. 선로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얼룩말 떼가 풀을 뜯었다. 고도가 올라가면서 주변이 어두워질 때쯤에는 저 멀리 서쪽으로 눈 덮인 킬리만자로 봉우리가 보였다.
 철도 여행은 순탄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삼등칸 화장실 칸에 이 났다.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렸고 새카만 연기가 금세 비좁은 기차 칸에 번졌다. 문득 섬뜩한 느낌이 들어 창밖을 보니 어둑한 아프리카의 풍경 위로 파란색 불꽃과 빨간색 불꽃이 나란히 떠올라 있었다.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불꽃이라니, 묵시록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믿을 법했다. 눈처럼 보이는 부분이 전혀 없는, 그저 불꽃 덩어리였는데도 그것들이 이쪽을 쳐다보는 듯이 느껴졌다. 불꽃은 잠시 춤추듯 부유하다가, 기관차 앞쪽으로 휙 사라졌다. 잠시 후 폭발음이 들렸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는데, 찬찬히 되짚어보니 예전에 책에서 본 불의 흡혈귀와 비슷했다. 지능이 있는 가스나 플라스마 형태로, 이들이 여기 있다는 건 이들을 소환한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굉음과 함께, 기차 앞쪽에도 불이 붙었다. 프리스비와 함께 식당칸으로 몸을 피하려 했으나, 직원이 문을 막고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흑인은 식당칸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큰 실랑이로 번지기 전에 식당칸에 있던 실비아가 직원을 밀치고 나와 주변을 훑어보았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탄수차와 식당칸에서 물을 끌어와 불을 껐다. 다행스럽게도 큰불로 번지기 전에 막을 수 있었으나 기차가 멈추고 말았다. 주변이 정리되는 것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 근처에서 나귀를 빌려 타고 마저 나이로비로 향했다.

 

 

 

1925.10.11


 밤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반나절을 낭비해 다음 날 낮에야 나이로비 시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모두 녹초가 되어 노포크 호텔에 짐을 풀었다. 실비아가 합류한 뒤로 잠을 편히 자고 있다.


 호주에서 사교도들이 큰 의식을 치르는 날을 알아낸 것은 희소식이다.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적 여유가 촉박한 것도 알게 되었다. 호주에서 출발하기 전 메이벨에게 전보를 부처, 나이로비 조사를 부탁했다. 메이벨은 우리보다 먼저 나이로비에 도착한 뒤 작은 팀을 꾸려 할 일에 착수했다.
  오늘 메이벨 일행과 만났다. 메이벨은 여전했고, 그가 케냐에 도착해서 고용한 휴 레드우드와 맹수 사냥꾼 도리스 브렛츠와도 인사했다.
 여기부터는 메이벨 일행에게 받은 자료와 조사한 내용을 들은 대로 정리해둔다.

  • 나이로비의 신문사: 나이로비 스타, 이스트 아프리칸 스탠다드.
  • 나이로비 스타 - 나탈리 스마이드 부인.
     -칼라일 탐사대: 신문 기사는 대부분 기존에 알던 내용. 칼라일 탐사대는 이집트에서 얻은 정보를 확인하러 케냐로 왔는데, 그 정보란 이집트에서 케냐로 이주한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주요 대원들이 햄프턴 하우스에서 묵었고 호러스 스타렛과 네빌 저민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당시 기사에 칼라일 탐사대의 사진이 동봉되어 있다. 펜휴는 전의 사진보다 뚜렷하게 젊어 보이는데, 반면에 하이파샤는 창백하고 아파 보였다.
     나탈리 부인도 당시 칼라일 탐사대의 방문을 직접 보았다고 한다. 기억하기로는, 초원에 엔디콧 대령이 사는데 그 집에도 며칠 묵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다들 어딘가 기묘한 분위기였고 건강이 안 좋아 보였다.
     하이파샤는 그중에서도 유달리 안색이 창백해 안쓰러울 정도였다. 특히 아침에 심했다.
     로저 칼라일은 위스키를 좋아하는 청년이었는데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허스턴이 몹시 쌀쌀맞았던데 반해 오브리 경은 활기도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격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이를테면, 탄 카우르(작고 고약한 성격의 여자, 차 상인)가 햄프턴 하우스에 자주 들렀다.
     셀커크 중위: 아직 나이로비에 있을 텐데 소식을 들은 지 좀 되었다고 했다.
     존스턴 케냐타: 반체제 인사라며 악평했다. 키쿠유 중앙 협회 소속.


 그렇게 스마이드 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술에 취한 중년 남성(사냥꾼 복장, 훈장 착용)이 쳐들어와서 화를 냈다. 엔디콧 대령이었다. 나이로비 스타의 기사 때문에 손님 다 떨어져 나가 먹고살 길이 없다며, 정정 보도를 낼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나탈리 부인은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기에 상황을 해결하고자 엔디콧 대령을 도와주기로 했다.
 그는 나이로비 남서쪽에서 사냥꾼 쉼터를 운영했다. 나탈리 부인이 쓴 기사를 간추리자면, 숲속에 있는 쉼터에서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난다는 내용이었다. 일행이 미리 조사한 결과 6년 전부터 그 부근에서 12명이 사망했다. 그중 10명은 관광객으로, 6명은 미국인이고 4명은 영국인이었다. 남은 2명은 쉼터에서 고용한 하인들이었다. 모두 쉼터 부근으로 사파리를 나갔다가 죽었는데, 대체로 전망대 부근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들 일부는 원숭이 입 정도의 크기로 뜯어먹힌 채였다.
 나탈리 부인은 놀라긴 했으나 엔디콧 대령을 안쓰럽게 여기는 듯했다. 들어보니, 온 가족이 함께 이민 왔는데 얼마 안 되어 미지의 병으로 부인과 아들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았다. 그 뒤부터 사람이 조금 이상해졌다고 한다.

 

  • 이스트 아프리칸 스탠다드 신문사.
     1919년 난디족 다섯 명이 범인으로 체포당한 기사. 사람 다섯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사진. 해당 기사에 칼라일 탐사대 사건 조사를 맡은 책임자는 정부청사 식민지 내무차관 로저 코리던이라고 나와 있다.
  • 호레스 스타렛:
     스와힐리 타운의 병원 및 미션스쿨에서 일하는 성공회 신부 겸 의사.
     칼라일 탐사대가 의약품을 구할 곳을 찾아 들렀다. 바셀린 등 기본적인 의료 도구를 받고 돈을 기부했다. 그리고 엔디콧 대령의 집으로 갔다. 스타렛은 이후 참사 소식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칼라일 탐사대의 시체를 확인할 때 곁에 있었다고 증언했지만, 좀 더 추궁하자 사실대로 말했다. 실제로는 당국에서 스타렛의 입을 막은 것에 불과하며, 에리카 칼라일까지 케냐에 온 탓에 범인을 찾는 일이 급해지니 아무나 용의자로 몰아 상황을 대강 정리했다고 한다.
  • 네빌 저민:
     정부청사의 법정 변호사.
     오브리 경이 그에게 와서 특정 종교집단을 조사했다.
     네빌 저민의 증조할아버지뻘 되는 웨이드 저민 경이 18세기에 발견한 폐허 도시 이야기를 했다. 콩고 분지 깊은 곳에 폐허 도시가 있는데 과거 흰 고릴라를 숭배하는 종교집단이 살았다고 한다. 그곳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도 존재한다. 자신도 언젠가는 그곳에 가보는 것이 꿈인데, 오브리 펜휴도 그 도시를 찾으려 해서 도움을 줬다고 한다.
     저민이 말하길 칼라일 탐사대는 나이로비를 떠날 때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인원을 데리고 갔다. 듣기로는 오브리 경이 강력하게 주장한 탓이었다. 
  • 셀커크 중위:
     몇 주 전 본인 집에서 화재 사고로 사망했다. 짤막한 뉴스 기사만 남아 있었다.
  • 존스턴 케냐타:
     교단에 관해 묻자, 조용히 자기 방으로 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교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어봐 가볍게 대답했다. 케냐타는 잭슨 엘리어스를 만났는데, 그가 불나방처럼 위태로웠고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보였다고 증언했다. 케냐타는 피투성이 혀 교단이 오래된 교단이라는 것만 알고 있고, 이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거짓말일 가능성이 있다. 일행이 충분히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 탄 카우르:
     아시아인 구역에서 제일 큰 차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조카로 추정되는 십 대 후반 정도의 젊은이가 가게를 보고 있었고, 본인을 만나지는 못했다.


 조사를 끝난 후 일행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엔디콧 대령의 쉼터로 향했다. 쉼터는 보요이 족 영토 부근에 있었는데 자칼 같은 고양잇과 맹수 서식지라, 원래부터도 관광객에게는 추천되지 않는 곳이었다. 동물들이 다니는 길 부근에 지어진 전형적인 수렵 사냥 숙소로, 바닥에는 사자 깔개 장식이 걸렸다. 쉼터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일꾼은 라는 이름의 흑인 한 사람으로, 50대 정도 되어 보였고 말을 못 했다. 쉼터에서 일한 지는 6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전망대 쪽에서 주로 사건이 일어났다는 건 앞선 조사로 알고 있었기에 일행은 곧장 전망대로 향했다.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니 전망대 아래쪽 모래에 찍힌 자국들이 있었다. 짐승의 손톱자국에 가까운데 사자는 확실히 아니었고, 사람이나 원숭이 정도 크기의 낯선 자국이었다. 부근에 얼룩말 같은 동물의 뼈가 굴러다녔다.
 같은 날 밤 전망대에서 밤을 보내다 습격을 받았다. 바닥 문 쪽에서 사람들이 기어 올라왔다. 모래 먼지가 바람에 날려 시야를 가렸다. 습격자는 백인 남자 둘에 중년 여자 하나, 어린애 하나였는데 등불 아래에서 보니 산 사람이 아니라 몸에서 모래를 뱉어내는 괴물이었다. 칼로 찌르자 모래 먼지로 흩어져 흔적도 남지 않았다.
 끔찍한 밤이었다. 그 소동에 전망대가 무너졌으며 도리스가 많이 다쳤다. 괴물들을 다 죽인 줄만 알고서 다음 날 엔디콧 대령과 함께 전망대 부근을 순찰했는데, 밤이 되자 또 모래바람이 불더니 괴물들이 나타났다. 어제보다 숫자가 더 늘어있었다. 엔디콧 대령은 아이와 여자를 보더니, 넋을 놓고 그들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를 겨우 기절시킨 뒤 도망쳤다.
 정신을 차린 뒤로 대령은 술만 마셔댔다. 휴가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는 가족들이 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는, 스마이드 부인에게 들은 바 있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6년 전 칼라일 탐사대가 왔을 때 그런 사연을 내보이자, 가족을 다시 만나게 해주겠다며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그 오두막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짓을 했다. 일이 끝나자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들이 일어났다. 엔디콧 대령은 까무러쳤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칼라일 탐사대는 떠나고 없었다.
 날이 밝은 후 전망대 부근을 철저하게 조사했으나 어떤 장치나 마법이 쓰였는지 알 수 없었다. 여유 시간이 적었기에 메이벨이 엔디콧 대령에게 전망대의 위치를 옮기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으로 이 일을 마무리했다.
 여기까지가 우리와 만나기 전에 메이벨 일행에게 있었던 일이었다. 정보공유를 끝낸 뒤, 우리는 따로 조사를 계속하되 필요할 때 연락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1925.10.13


 메이벨에게 얻은 정보 중에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존스턴 케냐타를 찾아갔다. 메이벨 일행이 받았던 질문을 우리도 받았다. 이것저것 가늠할 여유는 없었기에 아는 바를 솔직히 대답했다. 잠깐 고민하던 케냐타는 입을 열었다.
 “저는 많은 걸 아는 건 아니고, 그들이 잔인하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무로기(예언자)라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야 그런 세계에서 벗어나 당신들의 세계에 들어가려고 애를 썼는데 당신들이 먼저 날 찾아오다니 묘하군요.”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라면 위대한 분다리를 만나보셔도 좋겠습니다.
 잭슨 엘리어스는 위태롭고 그의 운명은 이미 묶여 있었지만 우리는 아직 운명이 결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다.
 “밖에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데, 거리를 두고 그를 따라가세요. 그 친구가 멈추면 여러분도 멈추세요. 그가 노란 문으로 들어가면 재빨리 따라 들어가세요.”
 밖으로 나가보니 그 말대로 키가 크고 흰 셔츠를 입은 흑인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우리를 확인하고 싱긋 웃더니 몸을 돌려 스와힐리 타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맨발이었는데 팔다리를 사뿐하게 움직였다.
 그가 주변을 예의주시하는 눈치였기에 이쪽에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미행이 있었다. 젊은 남자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도망을 쳤는데 인상이 낯이 익은 것이 몸바사에서도 언뜻 본 듯했다. 그곳에서부터 뒤따른 걸까.
 진흙으로 된 길을 지나 골목을 돌았다. 남자는 노란 문 앞에 멈춰서서 우리를 돌아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노란 문 안은 작은 헛간이었다.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노란 롤스로이스 로드스터가 세워져 있었다. 그걸 함께 타고 먼지가 자욱한 흙길을 달려서 또 한두 시간쯤 갔다. 주변으로 탁 트인 초원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나이로비를 벗어나 외딴 마을에 도착했다.


 차가 서고, 마을의 오두막에서 섬세한 인상의 남자가 나왔다. 우리를 데리고 온 남자가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잘 들리지는 않았으나 어조를 봐서는 우리와 함께 온 사람이 그를 설득하는 듯했다. 기다리는 동안 동네 아이들이 근처로 모여들어 눈을 빛냈다.
 마을 남자의 이름은 오코무라고 했다. 오코무는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우리에게 왜 이곳에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피투성이 교단을 막으려고 하는데 케냐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되는대로 길을 찾고 있다고,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코무는 우리를 살피는 것처럼 한번 쓱 보고는 따라오라고 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마사이 족 오두막이었다. 진흙으로 지어진 집이었는데 주변에 있는 다른 집들보다 더 컸고 형태가 조금 달랐다. 주변에 울타리가 쳐져 있고 문을 대신해 커튼이 달려 있었다. 오두막 내부는 긴 통로가 현관에서부터 한 바퀴 돌아서 방을 감싸는 형태였다. 통로 벽에 이것저것 가면이며 부적이 걸려 있었다. 창문도 조명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딘가로부터 빛이 들어와 주변이 잘 보였다. 가운데 방에는 다채로운 기호와 문양이 일정한 패턴을 두고 그려져 있었다. 일종의 보호진인 듯했다.
 입구 반대편에는 몸집이 작은 노인이 앉아있었는데, 어쩐지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오코무가 들어서서 노인의 발을 주물렀다. 이 노인이 바로 분다리였다. 오코무가 말하길, 분다리가 수련을 하다 보니 저편과 가까워졌고, 지금은 여기 있지 않아 그가 돌아오길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노인은 메마른 나무토막처럼 고요했고 우리는 반나절이 넘도록 기다렸다. 어느 순간 노인의 몸이 떨렸다. 이내 뻣뻣해지면서 부푸는 것처럼 생기가 돌았다. 그는 살아있는데도 미라처럼 주름이 많아 그 연배가 짐작되지 않았다. 노인이 방 안에 들어앉은 우리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스와힐리어였고 옆에서 오코무가 통역해주었다.
 실비아를 보고서는 노란 옷의 왕이, 그 일이 완전히 다 끝난 게 아니라고 얘기했다. 실비아는 잔뜩 화가 나서는 뭐 씹은 표정으로 이마를 구겼다.
 내게는 집에 있는 가족에게, 형에게 연락하라고 조언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는데, 그쪽이 아니고 나를 위해서 연락하라고 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스비에게는, 그 친구(아마도 자오를 말하는 듯했다)한테 줘서 보낸 물건 말고, 새로 소포가 올 텐데 그건 잘 가지고 다니라고 했다. 누가 보내는지는 이미 본인이 잘 알 것이라며.


 그렇게 한 마디씩 말을 건네고 나서, 분다리는 너무 희미해서 거의 들리지도 않는 숨을 내쉬었다.
 “임무는 위험한데 시간이 급박하다. 좋은 말을 듣고 싶으냐, 진실을 듣고 싶으냐?”
 “진실이 필요합니다.”
 “입에 발린 말 하는 놈들은 지하철에만 가도 널렸구만. 그걸 들으려고 그 긴 시간을 기다렸겠어?” 실비아가 불평했다.
 “피투성이 혀가 오만해진다. 이 땅의 사람들이 닥쳐올 피의 제사 때문에 교단에 납치되어서 산으로 사라지는구나. 지도자들은 썩은 생각과 행동으로 타락하고 있다. 우리가 케레나가의 주인 은가이에게 이 사악한 것을 막아달라고 기도를 해야 한다.”
 분다리의 말은 구슬을 던지듯 무심하고 또 신중했다.
 “이제, 알고 싶은 걸 물어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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