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 니알라토텝의 가면들 캠페인 탐사자 시점으로 캠페인 내용을 기록한 글입니다.
저의 기록용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스포일러입니다!

현재 플레이 중인데 마스터가 아니고/아직 엔딩을 안 봤다면
탁별로 정보량이 다르니 유의하세요.

 

중국편 요약 / 호주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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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요약.

 중국에서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면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게 기적에 가깝다. 내가 조금만 더 종교적인 인간이었다면 소명 의식마저 느꼈을 것이다. 몇 가지 주요한 사건들 위주로 간략하게 기록해둔다.
 먼저 다크 미스트리스 호에 몰래 잠입했다가, 배가 그대로 출발해버린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우리는 회룡도에 도착해 간단한 정찰을 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하얀 뱀, A.P. 혹은 오브리 펜휴라고 불리는 칼라일 탐사대의 일원을 만났다. 그는 기묘하게 젊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불쾌한 주술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그를 물리쳤다. 아니, 물리쳤다고 생각했다.
 회룡도에서 탈출해 돌아오는 길에 배가 폭풍우에 뒤집혔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으나, 당시에 가지고 있던 대다수의 메모와 기록이 소실되었다. 카메라도 새로 구해야만 했다.
 그 뒤 간단한 정비의 시간을 가지던 중, 다가올 새 중국의 투사들(새중국)이라는 중국 내 게릴라 단체에 납치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들은 상하이의 부패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였다. 새중국은 사교도들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로 회룡도를 노리고 있었고, 우리는 마침 그곳에 다녀온 참이었다. 어렵지 않게 협력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곳에서 재클린 브레이디를 만났다. 그로부터 칼라일 탐사대에게 있었던 일과, 로저 칼라일의 행방을 들을 수 있었다.

 

012
브레이디의 진술

 

 호팡의 집에 브레이디의 연인인 췌이메이링이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그를 도와 호팡의 집에 잠입했다. 새중국 소속의 어린애, 아니 젊은이 하나가(이름은 자오웨이라고 한다) 잭 브레이디를 지나치게 동경하는 데다 철이 없었는데, 이런 경향의 청년들이 흔히 저지르는 비행을 그도 저질렀다. 그러니까 몰래 숨어서 우리를 따라왔다. 중독되어 목숨을 잃을 뻔도 했고 누군가는 기묘한 주술이 걸린 끔찍한 방에 영영 갇힐 뻔하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해냈다. 췌이메이링은 고문으로 쇠약해진 상태긴 해도 구출에 성공했고, 다들 겨우 목숨은 붙인 채 살아 돌아왔다. 
 이후 호팡의 계획을 막기 위해 새중국 무리와 함께 회룡도에 잠입했다. 회룡도의 어두운 동굴은 심해에서 올라온 끔찍한 존재들과 그들이 부리는 질퍽한 액체 괴물들, 의식의 날을 맞은 사교도들로 붐볐다. 그들은 잡혀 있던 가엾은 사람들을 학대하면서 의식을 치렀다. 그곳에서 나는 직접 강림한 비대한 여인, 끔찍한 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이 촉수를 뻗어 펜휴의 머리를 쓰다듬자 죽은 몸이 움직였다. 되살아난 그의 동공은 저 너머의 숨겨진 비밀들을 담은 듯 어두웠다. 제사장이 돌아오자 사람들은 환호하면서 그들의 신에게 제물을 바쳤다. 괴물은 자기 신도들을 게걸스럽게 잡아먹었다. 우리는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괴물이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우리는 새중국 젊은이들과 함께 남은 사교도들을 상대했다. 적지 않은 희생이 뒤따랐다. 오브리 펜휴가 지옥에서 기어 나오는 일이 다시 없기를.

 

0123
사교도들의 기록

 

 우리가 호팡의 집에서 고생할 무렵 메이벨과 무셴의 현군칠장비경 연구가 진척을 보여, ‘눈’을 새기는 주문을 알아냈다.

 

눈을 새기는 법

 

 우리는 만월이 뜨는 날에 회룡도로 되돌아갔다. 우리가 겪었던 그 끔찍한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숨겨진 장소에 봉인의 문양을 새겼다. 이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는데, 그날 이후로 무언가 중요한 것, 내 안의 작은 일부를 영원히 잃어버린 기분이다.
 메이벨은 중국에 남아 자료를 연구하면서 도움을 주기로 했다. 프리스비와 잭 브레이디는 함께 호주로 간다. 고작 몇 달을 함께했을 뿐인데 이제는 없었던 시절이 기억이 나지 않는, 슬픔이 맨 마지막으로 나를 뒤쫓아왔다. 꿈속의 불길한 목소리와 함께. 

 


 낭패다.
 뭐가 낭패냐고 하면…… 그러니까. 초대한 적 없는 진짜 마지막 손님. 새파란 어린애. 자기가 지금 뭘 하는 건지, 어디에 끼어든 건지도 모르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7월 4일에 상하이를 떠나 호주행 배에 올랐다. 그리고. 자오가 배에 탔다. 몰래. 이런 식의 사고를 예상했어야 하는데. 아니, 그런가? 이런 걸 어떻게 예상하지? 여권은 재클린이 구해준 모양이었다. 아무리 대책이 없는 막무가내라도 이런 일은 사전에 상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쏘아붙여도 전혀 듣는 눈치가 아니다. 자오 본인을 붙잡고 어른스럽게 설득해보려 했으나, 처음부터 듣는 시늉도 안 하더니 이젠 내 코빼기만 보여도 도망을 친다. 말이라도 한마디 걸려면 눈에 불을 켜고 온 배를 뒤져야 한다. 프리스비 씨마저 말리지 않는다.
 그래. 그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이런 걸 허락할 수는 없다. 그는 회룡도에서 있었던 끔찍한 일도 보지 못했다. 그런 건 영영 보지 않고 사는 게 좋다. 대체 이 배에 탄 사람들은 양식이라는 게 있는 건가? 어른이 되어서 하나같이— (쓰다 말고 줄이 죽죽 그어진 부분)
 ……이런 문제에 쓸 시간과 정신적 연료가 더는 없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내가 붙잡고 늘어져봤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것이다. 일단은 보류. 적당한 순간에 잘 설득해서 돌려보낼 것.

 

 

 

1925.7.22

 두통과 함께 시작해서였는지, 그게 무슨 징조라도 됐던 건지 이번의 항해는 그리 순조롭지 못했다. 파도가 거칠었고 바람이 궂었다. 예상보다 시간을 더 써가며 호주에 도착했다. 적도를 지나온 이곳은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호주에서 확인할 일들의 목록을 몇 가지 정리해둔다.

  •  앤서니 콜즈 교수(시드니 캠퍼다운) 방문, 그에게 들은 ‘박쥐들의 아버지’ 기록.
  • 헨슨 공업 지하에서 발견한 운송장에 적힌 정보: 호주 랜돌프 운송회사 허스턴 앞 독사들의 아버지 황금상/고대 기계 부품/기술 도면과 청사진을 보낸 기록.
  • 펜휴 제단 지하에서 발견한 정보: ‘포트 다윈, 노던 준주, 호주’ 주소. 날개에 사슴 머리가 달린 스텐실에 ‘랜돌프 씨 직접 수령 요망’이라고 쓰여 있었던, 비만한 용의 조각상.
  • 미국: 프나코티카 필사본이 보여준 사막 위 고대도시의 환상. 관찰하는 정신들을 부르는 방법.
  • 중국: 호팡의 사무실에서 발견한, 호주 칸캇지리 모티머 와이크로프트에게 광업 장비를 보낸 기록.

 이렇게 정리를 마치고 나니, 새삼 내게도 정보가 하나의 무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이들 사교에 대해 아는 것이 이제는 적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 소유물, 장기 말들, 신의 이름까지. 동물들이 다른 무엇보다 자기 천적을 가장 잘 알듯이 그렇게 나는 매 순간 그들에게 골몰했다. 그들의 계획을 훼방 놓을 대책을 강구하고, 가진 지식을 되새김질하며 이따금 그 광기의 끄트머리라도 읽어보기 위해서 혹은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끔찍한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미움에는 이해가 필요 없다.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의 항구 도시 프리맨틀.
 입국 과정에서 프리스비가 세관에서 총을 압수당했다. 호주의 차별적인 정책 때문이었다. 남이 알아주길 바라서 하는 일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훼방이 놓일 때마다 지친다. 무기를 추가로 갖춰 둘 필요가 있다.
 배를 타고 퍼스로 곧장 이동했다. 도착한 직후 제이덕에게 받은 전화번호로 콜즈 교수에게 연락했다. 그의 대리인 데이빗 다지가 대신 전화를 받았다. 콜즈 교수는 아직 미국에 있었다. 10월에나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으니, 다지에게 대신 연구 자료를 살펴볼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다.
 이후 배편으로 시드니에 닿았다. 고층 건물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기묘한 불균형의 그림을 그리는, 한창 개발 중인 도시의 모습이 만연했다. 콜즈 교수의 집은 시드니 대학 근처의 주거지 캠퍼다운에 있었다. 다소 헐렁한 인상의 다지는 스스로 콜즈 교수의 부교수라고 소개했다. 
 박쥐들의 아버지에 대한 자료는 전화로 들었던 내용과 일치했다. 눈여겨 볼만한 유리 건판 사진이 네 장 있었는데, 거대한 바위 옆에서 땀을 흘리는 남자들의 모습을 찍은 것이었다. 남자들 옆의 바위는 심하게 풍화된 상태였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광업 엔지니어 아서 맥워로, 콜즈 교수는 이것을 맥워의 재산 관리인 로버트 매킨지에게 받았다. 다음은 맥워가 직접 쓴 일기다.

 

01
 아서 맥워의 일기 (1921년)

 

 다지가 옆에서 끊임없이 호기심을 보여서 결국에는 콜즈 교수의 자료를 함께 보았다. 그는 보는 데서 끝낼 생각이 없었는지, 자신이 포트 헤들랜드에 사는 매킨지를 직접 소개해주겠다며 열성을 보였다. 우리는 그 도움을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한시가 급했다. 다음날로 출발 날짜를 잡고, 그에게 감사 인사를 표한 뒤 나왔다.
 더 이동하기 전에 프리스비의 총을 구해두기 위해 함께 외출했다. 호주로 오기 전 할 수 있는 만큼 현금화해둔 돈이 있어서, 사는 김에 모자라지 않을 만큼 무기를 채웠다.
 출발하기 전, 시드니에서 조사한 자료들을 정리해둔다.


 셰익스피어 플레이스 시드니 미술관.
 검게 부풀어 죽어가는 원주민 그림, 박쥐 숭배 종교의 인신 공양 의식을 형상화한 원주민 그림. 이들은 박쥐들의 아버지라는 존재를 숭배했다.

 시드니 대학 주립 도서관.
 1. 호주 원주민들과 관련된 책: 박쥐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박쥐를 닮은 날개에 세 개로 갈라진 붉은 눈을 가진 거대한 존재의 이야기가 쓰여 있다.
 2. 지하 도시의 전설과 노래를 서술한 옛 탐험가들의 일지: 고대 종족, 신들이 지하 도시를 지었다. 그 신이 바람과 싸웠다는 전설이 있다. 신들은 바람에 패배했고 그 때문에 멸망했다.
 익숙한 이야기였다. 그 도시가 아직도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

 박물관
 호주 원주민 관:
 박쥐들의 아버지 조각상. 붉은색과 갈색의 진흙을 섞어 강조했다. 안면 조각상 위에 부조로 새겼다.
 폴리네시아 관:
 특이한 부조로 덮인 현무암 덩어리 세 개. 부조들 속에 전에 본 적 있는 거대한 용의 형상이 있다. 이 물건은 신이 잠들어있는 가라앉은 도시에서 왔다고 한다.

 

 

 

 1925.7.29

 시드니에서 포트 해들랜드로 이동했다. 대략 나흘 정도 걸렸다.
 포트 헤들랜드는 금맥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있어 금을 찾으러 온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그중에서도 칸캇지리가 제일 유명했다. 이곳에는 1921년에 건설된 비행장이 있어서, 퍼스와 연결된 비행선이 다녔다. 근처 주점에서 듣기로, 랜돌프 운송회사 지점도 한 곳 있었다.

 먼저 다지와 함께 매킨지를 만나러 갔다.
 그로부터 몇 가지 얘기를 들었다. 맥워는 그 뒤로 건강이 안 좋아져서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가 멀쩡히 살아있을 거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또, 매킨지는 원래 맥워의 자료를 더 갖고 있었다. 그러나 2~3년 전 한 미국인이 찾아와서는, 그 기록을 ‘빌려 가’ 돌려주지 않았다. 사진 원판과 더불어 맥워가 추가로 조사해둔 자료들이 전부 사라졌다. 도둑의 이름은 로버트 휴스턴이었다. 브레이디는 매킨지에게 칼라일 탐사대의 일원 로버트 허스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매킨지는 사진을 가져간 인물이 그가 맞다고 확언했다.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이 사진 속의 장소는 분명 사교도들과 관련이 있었다. 우리는 맥워 일행이 사진을 찍었다는 그 장소, 사막을 향해 가보기로 결정했다. 경험이 많은 매킨지가 사막행 준비를 도와주기로 했다. 다지도 꾸준히 거들었다. 이 사람, 계속 따라올 생각인 걸까?


 밤에는 랜돌프 운송회사의 지점에 잠입해 살폈다.
 서랍 속 장부는 랜돌프 운송회사가 전 세계 각지의 사교도 지점에 화물을 옮긴 기록이었다. 이 장부에 따르면 모티머 와이크로프트에게 보내는 물품들이 배편으로 포트 헤들랜드에 온 다음 기차로 운송되었다. 케냐의 아자 싱이 호팡에게 전보를 몇 번 보낸 내역도 존재했다. 그리고 영국의 펜휴에게 갈 화물이 두 개였다. 하나는 조각품이고 하나는 취급 주의 물품으로, 사슴뿔 모양 기호가 그려진 상자에 각각 담겨 있었다.
 상자 하나는 회사 건물 바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기하학적 흰색 선에 덮인 나무 조각상이 들었다. 조각상은 인간형 대머리에 둥글고 긴 수염이 촉수처럼 나 있고, 손발 끝에 갈퀴가 달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사진을 남겼다.
 또 다른 상자는 1m가 안 되는 크기였다. 안에는 기계장치와 함께, 로버트 허스턴이 개비건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었다. 편지에 따르면 이것은 ‘이스 족이 사용하던 단기 탐사 장치’였다. 60cm 정도의 크기로, 막대에 바퀴가 달리고 그 외 거울과 망원경 등이 부착되어 있었다. 별다른 동력이 필요해 보이진 않았고, 바퀴를 돌려서 작동시키고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식으로 쓰는 듯했다. 무엇을 탐사하는 장치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해당 지점에서 우리가 들고나온 물건은 이 상자뿐이다.

 

 그날은 숙소로 돌아와서 잠시 여유를 부렸다. 줄곧 혹독한 일정이었던 데다가 매번 뭔가를 하지 말라고만 한 것 같아서, 자오가 술자리에 끼겠다는 걸 굳이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한 일이라고는 프리스비에게 놀림 받다가 취해 잠드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자오가 깨어있을 때는 왁자지껄했는데 그가 잠들자마자 급작스럽게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그때는 다들 피곤할 일이 많았으니 조금만 마시고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오랜 여행 때문에 지쳐서였을 것이다. 있었던 일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평소보다 술이 오른 탓이거나. 그래도 아직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됐는데. 제대로 해결된 일은 하나도 없으니까. 잔 속의 미약하게 흔들리는 표면을 바라보자 걷잡을 수 없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지금 여기서 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안 해도 될 불평, 투정, 남의 등 위에 짐을 지우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프리스비는 너무 익숙해지지 말라고 했다. 그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그가 하듯 그렇게 가벼운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만큼의 잠들지 못하는 밤이 필요한지.
 지금도 눈을 질끈 감으면 암막 뒤로 피투성이의 이미지들이 터진 포탄 파편처럼 스친다. 런던의 습한 밤, 도살장의 돼지처럼 목에서 피를 흘리던 사람들의 얼굴은 곧 잭슨 엘리어스의 찢어진 이마와 움직이는 시체와 두들겨 맞아 죽어가는 산제물들 그리고, 그리고, 노라의, 다 괜찮다고 말하던 목소리로 뒤바뀐다.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실재가 되어 엉킨다. 폭력이 얼마나 끔찍하게 인간의 영혼을 찢어놓는지, 나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안 것은 그저 문장이었을 뿐이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벌려 안을 다 내보이고 나서 나는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도 꺼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눈가를 문질렀다. 우리에게 달리 무슨 수가 있을까요. 너무 오래 들여다본 폭력에 닳아 가는 것은 나뿐이 아니므로 당신에게 위로를 받아서는 안 되는데. 누군가 내 앞에서 자기는 날 때부터 상처가 아닌 흉터만 안고 태어났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구는 건 형 한 사람으로 충분한데.
 그러나 나는 너무나 약해지고 말았다.
 “그 애들이 보고 싶어요.” 찰랑이던 잔이 넘치듯 턱, 말이 넘쳤다. 그 애들이 보고 싶다. 노라가 웃는 것을 한 번만 더 보고 싶다. 언젠가 내게 다시 그런 기회가 올까. 오래 고여 있던 바람을 입 밖으로 꺼내자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내 몸을 빠져나와 어디로든 도망치려다가 사람의 발목을 묶는 세상의 힘에 이끌려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툭. 투둑. 나는 느리게 깨달았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울고 싶었다.


 “돌아간 친구는 잘 있죠?” 프리스비가 물었다. 나는 항구에서 본 제이덕의 마지막 모습이 아닌, 지난겨울 남부에 있는 그의 집에 들렀을 때 자기 집의 벽난로 앞에서 쉬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썼다.
 “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에 있는 친구도 지금 잘 쉬고 있을 거예요. 다 끝나고 만나죠.”
 “지금은 그것밖에는 바라는 게 없어요.” 그해 겨울에는 노라도 거기 있었다. 나는 사진처럼 남은 기억 속 한 장면을 꼭꼭 씹어서 삼켰다.
 프리스비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나 봐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
 “내가 안 미더울 순 있는데 그래도 많이 힘들면 얘기해요. 적어도 놀리진 않을 테니까.” 나는 머뭇거리다 감사 인사를 했다. 이 말 한마디에 담긴 것보다 더 표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걱정되면 그 친구한테 연락 한 번 해보는 건 어때요?”
 “제가 연락하면 자연스럽게 괴로운 일들이 다시 떠오를까 해서요. 모든 게 끝나면……. 다 잘 끝났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잘 끝날 거에요.”
 “그래야죠. 그러려고 하는 거니까.”
 “다시 말하지만, 힘들면 너무 참지 말아요. 나도 같이 일하려고 온 거잖아요.”
 “괜한 부담을 주기 싫어서…….”
 “그래 보여요. 무슨 생각하는 건진 알겠는데. 너무 스스로 몰아붙이지 말라구요. 힘들잖아요, 당신도 그렇고 다들 사람인데. 우리가 그 자식들처럼 미쳐있는 것도 아니고. 자오 군한테는 말 못하더라도…… 아, 당연히 못 하겠지만.”
 “자오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어른들이 서슴없이 저지르는 어두운 일에 아주 익숙한 그 젊은이에게서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겹쳐본다. 그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는 내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 돌려보내고 싶어요?”
 나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까?
 브레이디는 우리 대화를 툭 무지르고 들어왔다. 
 “애한테는 무슨 일 없게 할 테니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그가 뭐든 쉬운 일처럼 말하는 사람인 걸 알고 있는데도 그 말을 들으니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들었죠? 여기 어른이 셋이나 있는데 애 하나 못 지키겠어요. 프리스비는 곁에서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왼손이 있었던 자리를 바라본다. 이번엔 다르겠지. 그런 희망을 품는 건 어리석은 짓일까.
 “애는 돌려보내야죠.”
 “프리스비 씨도…….”
 “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너는,”
 브레이디가 말했다.
 “그게 문제야. 네가 여기 있는 모두의 보호자인 양 굴지 말라고.”
 내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있었나? 그의 말에 잠깐 멍해졌다.
 그랬나. 그간 노라와 제이덕과 오래 함께하면서 그런 역할에 익숙해진 건지도 몰랐다. 그 둘은, 정말로 어렸다. 돌아갈 곳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애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급급했다. 내 실패와는 상관없이 몸에 익은 습관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새삼스레 깨닫고 나니 현실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였는데도, 나는.
 “자오는 걱정할 만한데요. 어휴, 이 사람 덩치를 보세요~.” 프리스비가 넉살을 피우면서 브레이디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도 딱히 떨쳐내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도, 이렇게 해 먹고 산 세월이 얼만데.” 어조는 장난스러웠으나 그렇게 말하는 눈빛은 자기 방식대로 단단했다.
 “팔 하나 없는 사람한테 그런 염려 기껍게 받을 만큼 약한 사람 없어. 너는 네 걱정이나 해.”
 이어진 브레이디의 심드렁한 목소리와 그 날것의 내용에, 결국에는 나도 모르게 툭 웃음이 터졌다.
 “습관이 되어서 그런가 봅니다. 쉽지 않네요.”
 문득 이렇게 목에 걸리는 느낌 없이 웃어본 게 몹시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25.7.30

 자오는 아침부터 숙취에 시달렸다. 매킨지와는 역에서 헤어졌고, 우리는 8시간 정도 걸려서 화물용 열차를 타고 칸캇지리로 갔다. 헤어지는 길에 매킨지는 사막 진입 전 마지막 물자를 충당할만한 곳으로 모티머 와이크로프트의 가게를 추천했다.
 화물용 열차는 하루에 한 번 칸캇지리와 오간다. 우리 말고도 몇 명의 승객들이 있었다. 나는 낯선 이들의 힐끔거리는 눈빛에 지나치게 예민해져서, 구석 자리에서 잠시 쉬었다. 그러는 동안 프리스비와 자오가 이것저것 알아 왔다.
 야말 족 사람 몇이 사막에 얽힌 얘기를 일러주었다고 한다. 정리해두자면:

  • 이 사막에는 고대도시가 있는데, 고대도시에 출입하는 입구는 모래에 묻혔다가 드러났다가 한다. 그 안에 사악한 것들이 살고 있다.
  • 부다이라는 늙은 거인이 그 아래서 머리에 팔을 묻고 코를 골면서 잔다. 언젠가 부다이가 깨어나서 세상을 먹어 치울 거라는 전설이 있다.
  • 사막에 가면 독사가 많으니 주의할 것.
  • 자기 마을의 낙타 상단 주인이 ‘박쥐 신’을 본 적 있는데, 자기가 본 것 중에 가장 끔찍한 괴물이었다

 그런 얘기를 전해 듣고 있자니 저 멀리 탁 트인 사막의 하늘 너머로 거대한 새 세 마리가 날아갔다. 자오가 부탁해서 몇 장을 사진으로 남겼다.

 

칸캇지리에 도착한 후, 매킨지가 알려준 대로 소형 트럭을 구하고 물자를 조달했다.
 수소문할 겸 술집에 들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새로 발견한 노천 금광 얘기를 떠들고 있었다.

  • 전에 존 카버라는 이름의 미국인 남자가 땅을 파야 한다며 사람들을 스무 명 정도 데려가서, 10m 정도 깊이를 파게 하고 보너스를 주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케닝 목축 도로에서 이뤄진 탐광작업으로, 모티머의 백화점에서 일하던 더비 데이브라는 사람이 소식을 듣고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 두 주 전에 몹시 큰 새를 본 사람이 있다. 날개를 쭉 펼쳤을 때 2m는 됐다. 총을 쐈으나 높이 떠 있었는지 닿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기차에서 본 새들이 떠올랐다.
  • 북쪽의 딩고 폭포에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 진저 몰든이라는 미치광이 노인이 한 말이라는데.
     자오가 노인에게 듣고 온 사건의 경위는 대강 이렇다: “내가 유령이랑 싸워서 이겼어. 내 패기에 눌린 거지! 4일 전에 딩고 폭포 근처에 야영했는데. 근데 거기 딩고도 없고! 폭포도 없어! 그냥 작은 샘만 있다니까. 그 근처에 슬래터리네 집이 있긴 한데 그 미친 주정뱅이랑 아들내미한테 몸을 맡기느니 그냥 길바닥에서 자는 게 나아서. 자려고 하는데 불이 비쳐서, 그놈들이 날 쫓아내려는 줄 알았는데. 유령이었다고! 비명을 지르는데 소리가 안 났어! 내가 막대기를 휘둘러서 쫓아내지 않았더라면……” 자기가 용감하게 싸웠다고 얘기하고 있으나 정황상 무서워서 도망쳤다가 돌아간 듯하다.
     슬래터리 일가에 대해 수소문해본 결과 좋은 얘기를 해주는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 모두 사막에서 쉬어가기에 마땅한 집은 아니라며 입을 모았다. 빌 버클리가 일부러 그 집에 찾아가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20년 전 둘이 함께 동업하다가 슬래터리가 결혼을 하면서 갈라섰다. 하모니카도 잘 불고 술도 잘 사주는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요즘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모티머 와이크로프트의 가게. 가게 옆쪽에서 주인의 딸들로 보이는 10대 셋이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평범하게 말 상대를 해주었지만, 프리스비가 지하 도시 이야기를 하자마자 그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내부는 평범한 잡화점이었다. U자형 계산대에 턱을 팔에 괸 퀭한 남자가 주인 모티머였다. 간단한 물건 하나를 사며 분위기를 살폈는데 손님을 환영하는 눈치는 전혀 아니었다.

 새벽 세 시쯤 마을을 떠나기 전에 몰래 모티머의 가게에 잠입했다. 1층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자오가 이런 쪽에는 특기가 있다며 벽을 타고 몰래 2층으로 올라갔다. 나머지는 아래쪽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한참 동안 고요했다. 그러다 갑자기 창문이 열리고, 창밖을 향해 산탄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온 동네를 울렸다. 들킨 것이었다.
 프리스비는 망설임 없이 1층의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이후로는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든 와이크로프트 일가를 제압했으나 프리스비도 그렇고 브레이디도 심하게 다쳤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야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쓰러진 모티머 딸들의 팔목 안쪽에 사슴뿔 문신이 보였다. 사교의 징표였다.
 2층의 방 모티머의 침대 밑에서 오래 읽은 책 한 권을 발견해 챙겼다. 제임스 우드빌의 <경이로운 지성>.
 우리는 엉망이 된 잡화점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그레이트 샌드 사막으로 출발했다.

 

 

 

1925.7.31

 다지와 내가 돌아가면서 운전대를 잡으며 상당 시간 사막을 달렸다. 포장되지 않은 길을 나아가자니 사정이 편치 않아 뒷좌석에 누운 환자들이 이따금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지프 바퀴가 지나간 자리에 흙바람이 일었다. 한낮의 그레이트 샌드는 불타는 주홍빛으로 달궈졌다. 겨울인데도 덥고, 건조했다.
 문득 저 멀리서 피로에 젖은 사람이 낙타를 타고 가는 모습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물자를 조금 나누어주는 김에 그에게 이것저것 사정을 물었다. 그는 문명이 있는 메타카라로 향하고 있었다. 사막은 더 살만한 곳이 못 된다고 했다. 땅이 흔들리고, 박쥐들이 나오고, 원주민들이 사라졌다. 바람이 불지 않는 때에도 저 멀리서부터 회오리바람을 닮은, 휘파람 소리를 내는 이상한 형체가 보이기도 하고. 원래 그는 인부로 광산에서 일을 받고는 했는데, 예전에 존 카버라는 미국인에게 일감을 받은 이후로 사막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이름은 더비 데이브. 칸캇지리의 술집에서 들었던 이름이라 그곳 출신이냐고 물었지만, 자기는 잡화점에 일했던 적이 없고, 그 마을에서 산 적도 없다고 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기묘했다.

 주변은 온통 붉었다. 하늘만 역설적으로 푸르렀다. 간혹 주변을 굴러다니는 트리오디아가 민머리 위에 난 잔털처럼 붉고 단단한 땅 위를 가려 묘한 명암을 그려냈다. 삐죽삐죽 내키는 아무 곳으로나 팔을 뻗은 나무들은 모두 앙상하게 말랐다. 줄기가 흰 유칼립투스와 멀가나무, 백단향이 그 뻣뻣하고 날카로운 가지를 그물처럼 뻗어 하늘을 꽉 메울 듯 드리운 양털 구름을 야금야금 낚아채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더라. 사막은 묘하게 시간관념을 희박하게 만든다. 우리는 딩고 폭포에 다다랐다. 샘이라더니 정말 그랬다. 울퉁불퉁한 산마루에 붉은 바위가 마치 파도가 굳은 것 같은 형태로 서 있었다. 아래 웅덩이에는 바위 그늘이 드리워졌다. 동쪽으로 3km 정도 거리에 오두막집이 한 채 보였다.
 진저 노인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여기서 야영을 했다. 물이 있는 장소라 야영하기 좋은 자리였다. 밤이 되자 일교차가 뚝 떨어져서 모두 모포를 둘렀다. 사막은 금세 차게 식어버렸고 눈을 얼얼하게 만들던 강렬한 붉은빛도 지금만은 놓아주겠다는 듯 떠났다. 온기라고는 앞에 놓인 모닥불이 전부였다. 귓가를 지글거리던 열기가 가라앉고, 지프의 덜컹거리는 소음과 엔진음이 사라지니 주변이 훨씬 고요하게 느껴졌다. 드문드문 모닥불에서 불티가 타오르는 소리만 들렸다. 탁 트인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별이 박혀 있었다. 만약 별들이 말을 한다면 그 속삭임까지 들릴 만큼 가까웠다. 그 가운데 창백함을 흠뻑 머금은 남십자성이 눈부시게 빛났다. 낯설고 아름다운 밤하늘이었다.
 나는 모닥불의 불빛에 의지해 모티머의 집에서 가져온 책을 마저 읽었다.

<경이로운 지성>. 제임스 우드빌. 17세기 영어. 앞쪽의 지루한 자화자찬과 눈 뜨고 봐주기 힘든 성적 능력에 대한 자랑을 참고 넘기면 읽을만한 부분이 나온다. 위대한 이스족과 어두운 동굴 속의 휘파람 소리를 내고 창문 없는 현무암 탑에 사는 무서운 존재 사이의 전쟁을 그렸다. 끔찍한 전쟁의 묘사가 상세했다. 4억 년 전~5천만 년 전에 융성했던 위대한 종족 이스는 이 전쟁에 패배해 멸종했다.

 읽은 책의 내용을 일행에게 대강 설명해주고 담배를 피우러 잠깐 나왔다. 그 뒤에 사건이 일어났다.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은 들은 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자오의 휘파람 소리 사이를 가르고, 어디선가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바위 너머에서 희끄무레한 사람 형체가 보였다. 챙이 넓은 펠트 모자에 헐렁한 바지, 낡은 셔츠를 입고 턱에는 붉은 수염이 난 남자였다. 그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데, 갑자기 그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살과 기름이 타들어 가면서 연기를 뿜어내고 눈구멍 안에서 눈이 캐러멜처럼 녹았다. 아무것도 신지 않은 그 발은 흙투성이가 된 채로, 그는 불타는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달려왔다. 고통에 찬 표정 그대로 멜리사에게 뛰어들어 몸을 차지했다. 멜리사는 소름이 쭈뼛 끼치는 비명을 지르면서, 눈앞에서 타고 있던 모닥불에 뛰어들려고 했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내가 다급하게 멜리사를 붙잡았다. 그러는 사이 브레이디가 불을 껐다. 멜리사는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정말로 유령이었다. 다들 충격에 제대로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할 즈음, 저 먼 곳에서부터 다시 하모니카 소리가 들렸다. 유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왔던 길을 걸어왔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어 바짝 긴장했지만, 그는 다시 한번 불타오르는 대신 우리를 향해 따라오라는 듯한 손짓을 했다.
 딩고 폭포 위쪽에는 동굴이 세 개 있었는데, 유령은 개중 세 번째 동굴로 우리를 인도했다. 내부는 깊이가 깊고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유령이 이끌고 간 저 안쪽에서, 우리는 타다 남은 옷과 그을린 뼈를 발견했다. 유령의 시체가 분명했다.
 빌 버클리의 유령은 자기 뼈 앞에 서서, 갈망하는 시선으로 이쪽을 보았다. 그는 복수를 원하고 있었다. 이 일이 슬래터리 일가와 관련되어 있냐는 물음에, 유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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