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 니알라토텝의 가면들 캠페인 탐사자 시점으로 캠페인 내용을 기록한 글입니다.
저의 기록용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스포일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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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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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6.2


정신없이 숙소를 옮기느라 밤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가방을 잃어버린 것은 끔찍한 손실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넋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1925.6.3


 펜휴 제단 지하에서 발견된 문서에 따르면, 케냐의 푸니 초다리는 아이보리 윈드 호를 통해 상하이의 호팡에게 골동품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부두 술집에서 아침 일찍부터 술에 취한 아이보리 윈드 호의 선장 토르박을 찾을 수 있었다. 술을 사주며 자세한 사정을 캐내자 그는 불법적으로 미등록 골동품을 운송하고 있노라고 고백했다. 우리는 세관에 신고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그 물건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방수천으로 덮인 상자 안에는 밸브나 복잡한 전선이 달린 기계들—생소한 형태의 부품이 여럿 들어있었다. 또 다른 상자에는 다양한 석상이나 조각품이 가득했다.

 

  • 60cm 정도 되는 사암 조각에 박쥐 날개가 달린 생물이 역동적인 자세로 내려앉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얼굴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얼굴 대신 3개로 갈라진 둥글넓적한 눈이 달려있다.
  • 대형 검은 파라오 석상. 얼굴이 정교하게 세공된 수많은 벌레로 뒤덮여 있다.
  • 15cm 정도의 인간과 염소를 섞은 얼굴의 나무 조각품. 17세기 뉴잉글랜드 시대의 물건이다. 
  • 날의 면을 따라 오래된 기호가 새겨진 부식되고 마모된 단도. 
  • 내부가 자개 빛으로 반짝이는 커다란 고둥 껍데기.
  • 사람 발 가죽이 마치 신발 마냥 그 형태를 유지한 채 청동 고리에 걸려 있다. 최소 100여 년은 되어 보이는, 20~30대 남자의 발이다.
  • 잉글랜드 교외 묘지를 그린 그림. 짐승을 닮은 형체가 땅을 짚고 나오고 있다. M.S. 1924. 서명으로 봐서는 마일스 쉬플리의 그림인듯하다.

 

 이제 나는 이런 물건들을 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 없었다. 깊은 안쪽에서부터 너무나 많은 사건과 상념들이 동시에 끓어올랐다 사그라들었다. 나는 전과 달라져 버린 것이다. 그것도 내가 가장 원하지 않던 방식으로. 그러니 새 동료들의 도움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선장에게 다크 미스트리스 호에 대해서도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 배의 선원들은 개구리를 닮은 묘한 생김새에 다른 선원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점심때가 되어 맥첨을 만났다. 맥첨은 어제보다 솔직한 태도로 답했다. 조심해야 하는 때와 아닌 때를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로부터 잭 브레이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잭 브레이디는 자기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맥첨도 시시콜콜하게 캐묻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그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잭 브레이디의 랑군 행은 묻는 사람들에게 둘러대기 위한 낭설이다. 그는 아직 상하이에 있다. 사정은 몰라도 그가 위험한 일에 뛰어든 것만은 분명하다. 잭슨이 비틀거리는 주점에 들렀을 때, 둘은 대화를 나누었다.
 잭 브레이디를 뒤쫓는 사교 집단은 비대한 여인의 종단이라는 이름으로, 아마도 온 중국 또는 상하이 전체에 그 그림자를 펼치고 있다. 종단의 우두머리 호팡 대인은 관리들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치의 인물이다. 호팡 대인의 저택은 프랑스 조계지에 있었다. 맥첨은 정확한 주소를 알려주었다.
 우리는 다크 미스트리스 호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가끔 상하이에 들러 짐을 싣는 배이며, 사람들이 선원들의 수상한 외모에 대해 뒤에 수군거린다고 한다. 하지만 영국 국기를 달고 있어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한다.


 상하이 쿠리어.
 작은 신문사. 대표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앤서니 창이라는 남자다. 영문과 한문을 병기하기에 상하이에서 기사를 발간한 일이 있다면 이쪽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료실에서 특별히 건질 건 없었고, 고대 종교와 관련된 자료는 박물관에 소속된 번역가나 학자들을 통해 알아보라는 추천을 받았다.


 상하이 박물관.
 공공 조계지와 프랑스 조계지 사이에 있는, 영국식 시계탑이 달린 건물이었다. 내부에 전시된 건 전부 중국 유물로, 도자기나 병풍 등이 죽 늘어섰다. 제이덕이 있었더라면 유물의 가치에 대해 신이 나서 떠들거나 능숙하게 대처하기라도 했을 텐데, 그의 공백이 느껴졌다.
 우리는 박물관 큐레이터에게 물어 전문가를 여럿 소개받을 수 있었다. 34명이 목록에 있었다. 개중 여건과 위치를 고려해 추려서 세 사람을 만나보기로 했다. 역사학자 창닝, 예술 애호가 린옌위, 전임 보조 큐레이터 무셴.



 제일 먼저 창닝 박사를 찾아갔다. 그는 나이가 좀 있는 학자로, 책으로 벽을 세운 작은 성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는 학술적인 자문을 부탁하러 왔다고 하고 그의 시간을 빌렸다. 그는 우리의 질문에 상세하게 대답해주었고, 여러 자료를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비대한 여인의 종단은 한때 중국에서 가장 두려움을 샀던 비밀 종교 집단이다.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근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그랬고, 현재로서는 대가 끊겼다. 푸젠 지역의 해안에서 해적이 창궐하던 시절 그 해적들이 이 단체의 지시를 받는다는 소문이 있었으며, 종단의 신도들이 적에게 강력한 마법을 쓴다는 전설도 내려왔다. 이들은 농기구를 주 무기로 사용하면서 특유의 잔인함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들이 섬기는 어둠의 신은 거대한 인간 여성을 닮은 형태에, 바닷가의 영향인지 촉수가 잔뜩 달려있었다. 원래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내륙까지 퍼졌다. 전설에 따르면 바다 밑까지 위세를 떨쳤다고 한다. 물론 이런 기록이 흔히 그렇듯 그 위용을 드높이기 위해 가공된 이야기일 확률이 높지요, 하고 창닝이 덧붙였다.
 창닝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지식은 도움이 되었다. 결론에 경험적 사료를 더하기만 하면 된다. 검은 파라오의 교단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고려하면, 또 내가 직접 겪고 배운 바에 의하면, 이들은 절대 사멸하지 않았다. 대신 시대의 흐름이 이끌어감에 따라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었을 뿐이다. 학문 밖의 영역으로, 음모의 영역으로. 



 호팡의 창고.
 늦은 시각, 야음을 틈타 호팡 대인의 창고에 잠입하기로 했다. 창고는 부두에 근접한 곳으로, 강기슭에 걸쳐 건물 일부가 물 위에 선 구조였다. 화물칸과 업무공간이 나뉘어 화물이 이동하는 커다란 문이 한 면에 달렸고, 사무실용 문도 따로 있었다.
 우리는 창고 한구석의 문을 따고 최대한 조심해서 들어갔다. 하지만 기색을 눈치챈 것인지 건물 안쪽에서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다급히 위층으로 도망쳤다. 올라가는 계단이 헐거워 빠질 뻔했으나, 운 좋게 들키지 않았다.
 그 김에 2층을 먼저 살펴보았다. 한쪽 방에는 캐비닛과 서류, 장부가 놓인 사업가의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 거래 명세 서류, 둘둘 말린 항해도 같은 것들이 놓여 있다. 영국 런던, 케냐, 이집트 카이로, 호주, 회룡도의 지도다. 책상 바닥에는 열쇠가 달린 금고가 있었다.
 서류를 뒤져서 펜휴 제단으로 미술품을 수송한 명세나, 이집트의 오마르 알 샤크티에게 미술품을 보낸 기록, 케냐의 아자 싱에게 화물을 보낸 기록 등을 찾았다. 화물 대부분은 미술품이지만 가끔 책을 수송한 기록도 있었다. 또 호주의 랜돌프 운송회사를 통해 칸캇지리의 모티머 와이크로프트에게 광업 장비를 보낸 기록도 존재했다.
 아래로 내려가던 프리스비가 빠진 계단 밑으로 공간이 보인다며 모두를 불렀다. 아마 물건을 쌓아두는 별개의 창고인 듯했다. 창고 안에는 철문이 있고, 철문에 달린 창밖으로 사람이 오가는 그림자가 보였다.
 우리는 1층 사무실을 지나 화물 더미로 향했다. 프리스비는 순찰하던 남자 하나를 기절시키고 그 손전등을 빼앗았다. 창고에는 순찰하는 사람을 포함해 다섯 정도가 있었다. 최대한 조심하려 했으나 결국 난투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프리스비와 메이벨은 둘 다 몸놀림이 굉장했다(해결사인 프리스비는 그렇다 쳐도 메이벨은 의외였는데, 나중에 듣기로 선원들과의 생활은 꽤 거칠었다고 한다). 경비원들은 역시 일반인답지 않았다. 이들은 상황이 험악해지자 낫을 꺼내서 덤벼들었다.
 내 목이 거의 베일 뻔했던 흔적은 가느다란 생채기로 남았다. 메이벨은 낫에 허리를 찔렸고, 프리스비 씨는 다친 머리를 또 다쳤다. 비록 엉망진창이 되기는 했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우리는 간단한 응급 처치만을 끝낸 뒤, 경비원에게 빼앗은 열쇠로 계단 밑으로 보이던 예의 창고에 들어갔다. 그 안에는 교단의 물건이라 짐작되는 화물이 쌓여있었다.

 

  • 용의 뼈라고 쓰여 있는 거대한 짐승의 뼈 무더기, 상아색 가면, 청동으로 만든 궤. 궤의 손잡이에는 날개 달린 생물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다름 아닌 영국의 그 날 밤하늘을 뒤덮었던 괴물의 모습이었다.
  • 다양한 크기와 재질로 만들어진 풍만한 여인의 조각상. 중국 전통 복식을 입고 부채로 얼굴을 가렸는데, 아래로는 발 대신 촉수가 달렸다. 촉수는 기묘하게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A.P라는 머리글자가 적힌 상자 6개에는 각각 기계 부품들이 들어있었다.
  • 또 다른 상자에는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된 풍성한 제사용 로브가 들었다. 로브의 등 부분에는 위로는 부채, 그 아래로 촉수인지 갈고리가 나온 원형의 마크가 그려져 있다.
  • 다양한 화물들에 주소가 붙어 있다. 잡히는 대로 메모하자면: 호주 칸캇지리,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 토머스 가 7번지, 매사추세츠주 던위치, 아컴 미스카토닉 대학 의학부 허버트 웨스트 등. 

 

 창고 바닥에도 문이 달려있다. 열어보니 아래쪽으로 뻥 뚫려 바닷물이 지나가고 있었다. 바다로 연결된 것이다. 어떤 용도로 쓰이는 문일까?

 

 

 창고를 속속들이 뒤진 후, 나는 상태가 안 좋은 두 사람을 앞서 보냈다. 마지막으로 나가려는데, 문득 창고 구석에 누군가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뒷모습이었지만 알아보기 어렵지 않았다. 노라였다. 노라? 나지막이 부르자 이쪽을 돌아보았다. 눈동자는 물먹은 도화지 같았다. 가만 마주치는 것만으로 익숙한 색이 번졌다.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자신을 멈춰버렸다. 이해가 그 얼굴을 흩어 버릴까 봐 이해를 버렸다. 그러면서 내 말에 익사해버리기 직전의 사람처럼 말을 토해냈다. 여기서- 뭐 해요? 비틀어 쥐어짠 목소리는 거의 남의 것처럼 들렸다. 노라는 돌아온 것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세상에 내가 모르던 끔찍한 비밀이 있다면 내가 모르던 상냥한 비밀도 있을 법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설득하는 데 거의, 거의 성공한다.
 그러나 노라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저는, 여기 없어요. 나는 그 애의 눈동자에 비친 나 자신을 본다. 내가 그 애를 다정하게 여기기 때문에, 내가 만들어낸 환각 속에서조차 노라는 내가 이해를 거부하게 두지 않는다. 나는 환영의 세계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아직 숨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익사하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슬픔은 칼을 들고 있다. 그런데 내 목에는 한 줄 빗금이 갔을 뿐이다.
 추방령의 마지막 선고처럼 창고의 문이 닫혔다.

 

 

 위층의 금고에서 돈을 조금 챙겨 빠져나온 뒤, 곧장 프리스비와 메이벨을 입원시켰다.
 긴장이 풀리자 섬뜩함이 몰려왔다. 두 사람은 있었던 일을 소화해내려고 한다. 비록 무단 침입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의 일이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낫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직접 보는 것은 수십 번의 말보다 값진 경고가 된다. 나는 앞으로 더한 일들이 기다리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준다. 그것을 의무처럼 느꼈다.
 두 사람이 안정을 취하는 동안에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메이벨이 지출을 감내하고 사람을 고용했다. 호팡의 저택에 직접 잠입하기는 위험하니 전문가들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간만의 휴식을 취했다.

 

 


1925.6.5


 투자의 결과는 금방 밝혀졌다. 메이벨이 고용한 사람은 셋인데, 그중 단 한 사람 보퍼드 존스만이 돌아올 수 있었다. 그도 온전한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횡설수설 들은 얘기를 간략하게 재구성하자면 이러하다.

 호팡 저택은 그 부근의 저택들이 으레 그렇듯 높은 담장에 위쪽으로는 사금파리와 철조망이 감겨 있었다. 정문을 24시간 경비하는 데다, 안쪽이 바로 경비실이며 내부에도 늘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이들은 담을 넘어 들어갔다. 담을 넘자 곧장 거대한 연못이 보였다. 그 안에는 커다란 커튼을 닮은, 난생처음 보는 생물이 헤엄을 치고 있었고 주변에는 시종들이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녔다.
 꽤 넓은 저택이었다. 이들은 들어온 방향에서 곧장 보이는 북동쪽 건물 먼저 뒤졌다. 불상이 있는 방은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 불상의 목을 왼쪽으로 두 번 돌리자 숨겨진 문이 열린 것이다. 숨겨진 문 너머에는 무기 창고, 약과 비커들이 줄지은 방이 있었다. 더 안쪽으로는 철창이 달린 문이 있었는데 거기까지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 옆 방에는 호팡의 딸로 짐작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민달팽이나 지렁이 같은 것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비위가 상하는 광경이었다. 바로 옆에 붙은 화려한 방에는 다양한 귀중품들과 조각상들이 즐비했다. 풍만한 여인이 입은 중국식 복장 아래로 다리 대신 촉수가 빠져나오는 듯한 모습의 조각상이라든지. 보퍼드는 그곳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하는데, 사교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귀중품이었다.
 이후 인공 연못을 두른 손님 방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그중 한 곳에 안경을 쓴 백인 남자가 묵고 있었다. 시종으로 분하고 그 남자에게 말을 건 동료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에 쓰러지고, 뒤따라간 동료도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등 순식간에 무력화되었다. 보퍼드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목숨을 구걸했다. ‘살려 보내는 것도 괜찮겠지.’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뇌리에 뚜렷하게 새겨졌다. 주변이 온통 새카맣게 변하고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동시에 수천 수백 개의 눈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일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총을 발사했으나,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맨발로 황푸강 기슭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주머니에는 본인이 챙긴 금반지들과 함께 기억에 없는 접힌 종이가 한 장 들어있었다. 거기 찍힌 것은 사교도들의 마크였다.
 잠입한 일행이 겪은 일을 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자흐라 샤피크 같은 사교도들은 기묘한 마법을 쓰고는 했다. 그들이 만난 남자도 그런 사술을 부리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온몸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고통, 갑작스럽게 정신을 나가게 만들고 수족이 썩어들어가게 만드는 끔찍한 속삭임들. 갑자기 머릿속에 밀려드는 불유쾌한 감각. 나는 진저리를 치며 생각을 털어버렸다.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되었기에, 직접 호팡 대인의 집에 잠입하는 계획은 잠시 미뤄졌다.



 두 사람을 무리시키지 않는 선에서, 우리는 조금씩 움직임을 재개했다. 먼저 린옌위를 찾아갔다. 메이벨이 말하길 그는 사업가, 예술 애호가이자 큰손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현재 상하이의 별장에 머무르고 있었다. 언제나 머리에 제비 브로치를 달고 있다고 해서 제비 부인이라고 불린다.
 미리 약속을 잡지 않아서, 우리는 희귀한 골동품들이 전시된 응접실로 안내받은 뒤 꽤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응접실에는 뱀과 거북이가 섞인 생물의 조각이나 황금으로 된 앙크, 티베트 종교화 탕카, 용 장식이 새겨진 청동 종(여러 마리가 얽혀 있는데 그중 영국에서 본 그 끔찍한 괴물도 섞여 있다, 이 괴물은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는 걸까?) 등이 있었다. 제비 부인은 아름다운 시종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마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한, 고대에서나 존재했을 법한 비현실적인 화려함이 중국에서는 아직 가능한 일인듯했다.
 첫 번째 질문을 들은 제비 부인은 고상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데에 관심을 가지면 큰 화를 입을 수 있어요.”
 “하지만 부인 정도면 누군가에게 쉽게 화를 입을 만한 인물은 아니시지 않나요?”
 “아무리 그래도 넘어야 하는 산이 너무 크면 얘기가 달라지는 법이죠.”
 호팡을 거스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진 신의 모습 중 하나를 섬기는 위험한 종교 집단이 존재하고, 호팡은 이들의 대사제 역할을 맡고 있다. 제비 부인은 그를 직접 거스를 만큼 어리석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를 도울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우리는 호팡에 대해 캐낼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들었던 파편적인 정보들을 꺼내놓았다. 부인은 호팡 대인의 집에 칼 스탠포드라는 이름의 위험한 마법사가 묵고 있다고 일러주었다. 아무래도 호팡을 돕기 위해서인듯한데, 그 마법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호팡 대인에게 딸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호팡은 그 아이를 꼭꼭 숨겨 밖에 내보내지 않는다. 또, 그가 회룡도에서 강력한 기계를 만든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자세한 정보는 불명이지만 아마 거짓 소문은 아닐 것이다. 제비 부인은 직접 정보원들을 섬으로 보냈지만, 돌아온 정보원들이 이상할 정도로 말을 아꼈다. 마치 부인보다 더 두려운 무언가가 그 섬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다크 미스트리스 호의 선장은 쥘 사부아야르라는 이름인데, 싸구려 매음굴을 즐겨 다니는 인물로 행동거지에 문제가 있어 부인의 가게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잭 브레이디의 이름을 꺼내자, 제비 부인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 ‘좀도둑놈’이 자신의 책 현군칠장비경을 훔쳐 갔기 때문이었다. 제비 부인은 그를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를 찾게 되면 사례하겠다며 우리에게도 부탁했다. 이런 말을 하는 내내 제비 부인의 시선은 계속 프리스비에게 머물러 있었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무렵, 부인이 서랍을 열어 산가지가 든 통을 꺼냈다. 그리고 점괘를 보듯 흔들어 수납장 위에 펼치더니, 거치대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 읽었다. 이전과 달리 중국어로 이야기했기에, 메이벨이 통역해주었다.

 


 제비 부인은 손목에 있던 옥 팔찌를 빼서 프리스비에게 건네주었다. 선물이라면서, 곤륜산 아래 고대도시 허티엔에서 나온 허티옥으로 만든 팔찌인데, 이것이 당신을 지켜줄 거라고 속삭였다. 옆에서 메이벨이 들릴 듯 말 듯 작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후에 메이벨이 설명하기를 중국에서 옥 팔찌란 어릴 적부터 손에 꼭 맞게 만들어 평생 끼는 것으로, 아주 소중한 사람한테 주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프리스비는 어쩌다 본인도 모르는 새 제비 부인의 마음을 훔친 것일까? 어리둥절하던 찰나, 밖에서 시종이 가방을 하나 들고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 가방이다 싶었는데- 내 것이었다! 나는 침착을 유지하려 애썼다. 노력을 들이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곧장 펄쩍 뛰어올랐을 것이다.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비록 제 부하의 팔에 상처를 남기셨지만, 호의의 표시로 돌려드리니 사양 없이 받으셔도 돼요.”
 천연덕스러운 말씨에 곧장 허탈한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도둑은 사교도들이 아니라 제비 부인의 부하였다. 맥첨이 잭 브레이디와 친한 사이였으니, 잭 브레이디를 쫓는 제비 부인이 그의 술집을 감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인제 보니 프리스비에게 이런 열렬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도 이해가 갔다. 프리스비가 부인의 부하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으니까. 나는 가방을 돌려받았다는 사실에 그저 안도하고 또 맥이 탁 풀려서, 물건을 받은 이상 없던 일로 하겠노라고 말했다.
 저택을 나서면서 프리스비는 자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것 같다며 내게 사과했다. 사실 누구도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을 사건이니 그의 탓을 할 수는 없다. 또 제비 부인과의 만남에서 귀중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불운이 행운으로 이끌어준 셈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상황을 빗대어 전화위복이라고 한다.

 




1925.6.6


 다음날, 이른 시각 제비의 봉인이 찍힌 저녁 식사 초대장이 도착했다. 수신자는 프리스비였다. 나와 메이벨은 부인의 열렬한 러브콜을 받는 프리스비를 놀리면서 다음 일정을 준비했다. 오늘은 목록의 세 번째 인물인 무셴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무셴은 청나라풍의 외투를 입은, 왜소한 노인이었다. 그의 집은 허름했다. 노인의 눈가를 뒤덮은 주름에서 특유의 완고함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노인을 앞에 두고 이전에 다른 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비대한 여인의 종단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노인이 되물었다.
 “그들을 알고자 하는 이유가 뭔가?” 차분하고 한 편으로는 감정을 읽기 어려운 목소리였다.
 “저희는 죽음 숭배 교단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중 한 갈래로…”
 노인은 핵심을 비껴간 답변을 무질렀다.
 “애초에 그걸 조사하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없을 리 없다. 프리스비의 이유는 잭슨 엘리어스다. 프리스비는 맡은 임무를 수행하러 미국에서 이 먼 땅까지 왔다. 그는 사교 집단을 조사하다 죽은 친구의 유지를 이어받았다. 메이벨 역시 이 일에 자신을 바쳤던 사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차마 답하지 못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찾아내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호기심. 그렇다면 일라이저 웨버는? 막기 위해 있다.
 노인은 고개를 메이벨 쪽으로 향했다.
 “정말로 호기심 때문인가? 알아내고 들은 바가 있다면서. 자네는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게 맞나?”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알아야겠어요.”

 노인은 메이벨의 대답을 듣고 한참 동안 가만 생각에 잠겼다. 침묵을 깨고 나온 말소리는 무거웠다.

 “지금까지 이들로 인해 조각나고 깨지고 부서져 인생이 엉망이 되어버린 사람들 가운데 그 이야기가 남에게 발견되는 행운을 누린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네. 자네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것 또한 빙산의 일각이고, 분명히 그 아래 더 깊고 까마득한 시체의 산이 쌓여있을 걸세. 그 산은 지금도 쉼 없이 그 부피를 늘리고 있으며 하늘에 닿으려는 그 욕심은 멈춤을 모르네.
 그런데 지금의 중국은, 그러한 무고한 사람의 죽음조차도 사소한 일이 되어버린 곳일세. 그렇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여겨질 수 있는데도, 정말 괜찮은 건가?”

 나는 목숨을 잃을 뻔한 사람과 잃은 사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을 보아왔다. 이유도 당위도 없이 가라앉은 사람들.
 이 괴물을 잡아 반으로 가르면 그 검은 바다에 잠겼던 시체들이 떠오를까? 그렇게 하면 그들도 이제 편히 쉴 수 있을까? 아, 그들의 얼굴은 마침내 편안할까? 내가 본 환상 속에서 노라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더라. 어쩌면, 이미 떠난 사람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사실 미치기 직전인 것은 나여서, 그들의 위안을 핑계 삼아, 내가 편해지고 싶어서, 그래서 나는 멈추지 못하는 걸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 대신에 내가 거기 누워있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슬퍼할 사람도 없고, 집이라 부를 곳도 없는 내가. 잭슨 엘리어스가 살아남았다면 우리는 그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용을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많은 일이 훨씬 쉬워졌겠지. 노라 에버트가, 살아있었다면, 그냥, 그것만으로 세상은 조금 더 그럴 가치가 있는 곳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부질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무엇이건 가끔은 그저 멈출 수가 없는 때가 있다.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런 끔찍한 짓거리를 차마 내버려 둘 수 없기에. 더는 누군가 다치는 것을 원치 않기에. 페루에서 돌아섰더라면, 어쩌면. 아니면 적어도 미국에서. 이제는 늦었다.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 내가 평생을 들여 보고자 했던 세상의 진실은 사람을 삼키는 모래 늪과 같았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와 같았다. 나는 그만두는 방법을 잊었다. 용기와 어리석음과 관성을 겨우 그러쥐고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도 나아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나는 잠겨 죽거나 폭사할 것이다. 혹은 상상을 웃도는 더 끔찍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혼자만 끝장날 생각은 없다.
 프리스비가 눈썹을 세웠다. 저는 항상 위험 속에서 살아왔어요, 그렇게 말했다.

 “당신이 겁준다고 해서 달라질 것 없다고요, 노인네. 원래 하던 일이 덩치가 조금 커진 것뿐이지.” 그 목소리에는 날것의 반항심이 묻어있다. 이를 느꼈는지 무셴은 한 발짝 물러났다.

 “질문이 무례할 수 있었을 텐데, 대답해주어서 고맙네.”
 그래서, 답을 들은 노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얘기를 해주었다.


 “이 사교들은 사람들의 을 잘라간다네. 사람이 피를 흘리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걸 좋아하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추측에 가까우니 완전히 믿지는 말게.” 그는 여기서 잠시 멈추고 거친 목을 다듬었다.


 “교단의 신도들은 그들이 믿는 신을 이 땅 위로 불러오려 하네. 날짜는 머지않았네. 아마 기계 같은 걸 만들어서, 하늘에 독을 푸는 방법을 쓸 거야. 그렇게 하늘이 바뀌고 1년만 지나도 이제 세계는 사악한 존재들로 가득 차게 될 테지. 그렇게 하늘이 오염되고 세상에 사악한 것으로 가득 차면, 별들이 자리를 바꾸고 툴루 같은 고대의 존재들이 몸을 일으킬 걸세.”
 무셴은 뒤이어 몇 가지 낯선 이름을 댔다. “니오그타, 아자 토스, 요그 소 토스 같은 신들이 숭배될 때가 올 거야.”
 “그 사교도들이 모시는 신의 이름은 뭡니까?” 내가 물었다.
 “그 신은 너무나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어. 그중 하나가 비대한 여인이지.

 그는 니알라토텝이라고 불리는 존재네.”

 “검은 파라오나 박쥐들의 아버지, 비대한 여인… 그 모든 신이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모두 같은 존재이면서 각자 다른 존재이기도 하네. 이들은 결국 한 신의 여러 가지 모습이야.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
 “이런 지식을 어떻게 알게 되신 거죠?”
 “공부를 하다 보니 알지 말아야 하는 것까지 알아버렸지.”

 얘기를 마친 노인은 몇 번의 잔기침을 뱉었다. 그는 느린 동작으로 우리 각자의 얼굴을 살펴보고, 단호하게 맺었다.
 “자네들은 여기 너무 오래 있었네. 위험하니 다신 오지 말게.”
 그러면서 노인은, 만약 연락할 창구가 필요하다면 상하이 유치우편에 펑우페이라는 이름 앞으로 편지를 남기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를 문 앞까지 배웅해주었다. 밖으로 걸어 나오는 내내 오로지 한 이름이 입속에 맴돌았다. 니알라토텝. 괴물의 실체는 보다 선명해졌다. 그를 뚜렷하게 느낄수록,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손을 뻗어 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광대하고 고독하고 으스스한 공간에 툭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태평양을 가로지르던 배의 항적을 기억한다. 거기서 느꼈던 아득함과, 뒤틀린 용기를 생각한다.  “절대 그들이 바라는 만큼 쉽게 되진 않을 겁니다.”

 “자네들이 해준 말은 잊지 않겠네.”
 노인이 말했다.
 “자네들 본인도 그걸 잊지 말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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