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 니알라토텝의 가면들 캠페인 탐사자 시점으로 캠페인 내용을 기록한 글입니다.

저의 기록용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스포일러입니다!

핸드아웃은 혹시나 해서... 김칠이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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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 3. 18

 

 내 이름은 일라이저 웨버.



이것은 저의 기록입니다.

 

 

 

 

 


 

 

 

 

 

 

 

 

 

 

페루로 간다.

형에게 편지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의 답신 끄트머리마다 으레 적히곤 하는, 나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그 말이 내게 주는 묘한 죄책감 때문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탐사기자의 삶이 주는 자유로움이란 이런 것이다.

언제든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릴 수 있는, 식물을 몇이고 말려 죽이다 결국 반려를 포기하는 삶.

내게 있어 저널리즘이란, 진실을 밝혀내는 행위 전반에 붙여진 이름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이성의 불빛이 세상을 한번 밝힌 이후로, 그걸 들고 불 붙은 회전초처럼 쏘다니며 어두운 단면을 비춰보는 것이 나의 천직이 되었다.

진실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명예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전부다.

 

 

 


 

 

 

 



 리마에 도착했다. 탐험가 오거스터스 라킨 씨와 그의 조수 루이스 데 멘도사, 그리고 다른 탐사대 멤버들을 만났다.

우리는 마우리 호텔에, 라킨과 멘도사는 에스파냐 호텔에 묵기로 했다. 굳이 숙소를 다른 곳에 잡은 점이 의아했지만, 아쉽게도 에스파냐 호텔에 더는 빈 방이 없었다고 한다.

고고학자인 제이덕 에디 박사는 지나치게 젊고, 그의 하녀인 노라 애버트 양 또한 젊다. 처음에는 그가 탐사 캠프에 참여한 대학생인 줄로만 알았다. 어린 천재들이 갖곤 하는 그 치기어린 분위기 때문에, 그가 처음 입을 연 뒤로도 한참이나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노라 양은 자기가 만난 억척스러운 어른들을 따라 하려 하지만, 그 흉내가 오히려 그를 더 소녀처럼 보이게 한다. 반면에 인류학자인 제시 휴즈 박사는 점잖은 사람이다. 분위기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하나 이상 있으면 자리에 활기가 돌기 마련이다.

 학자들은 자기 분야를 이야기할 때 들뜨는 경향이 있어 대화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21일에 피라미드가 위치한 쿠노로 출발하는 여정에 대해 안내를 받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석연치 않은 점:

*루이스 데 멘도사는 지나치게 말이 없고, 불쾌할 정도로 사람을 노려본다. 시선이 거칠고 날카로워서 라킨 씨의 자질구레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 상태에 대해 의심하게 만든다.

* 유물을 얻는 과정에 대한 라킨 씨의 설명은 부자연스럽다. 사전 연구 자료를 몽땅 폐기했다는 점도 수상하다. 아무리 경쟁자를 걱정한다지만 너무 과한 대처가 아니었는지?

 

* 라킨은 아프다. 말라리아 후유증?

* 동료들이 지나치게 풋내기처럼 보인다.

 

 

라킨 씨가 보여준, 알파카 농부 에르네스토 몰로로부터 얻은 유물(사진이 붙어있다. 하나는 금잔, 하나는 펜던트).

몰로의 할아버지가 피라미드 내부에서 나왔다고 한다. 각자 다른 시기의 유물로 보인다.

 동료 학자들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조금은 들뜬 태도로, 이 유물이 발견된 피라미드와 티와나쿠 문명 사이의 연관성을 짐작했다. 티와나쿠 문명에 대한 연구는 학계에서도 갓 시작된 상황이고, 지금으로서는 밝혀진 자료나 정보가 거의 없다. 유물들의 출처가 정말 알파카 농부의 말대로라면 이 피라미드에 대한 조사는 굉장한 학술적 업적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

 

 형이 이걸 본다면 또, 내 명예욕이 내 목을 조른다고 생각하겠지. 이렇게 찜찜한데도 당장 미국행 배표를 끊지 않은 건 바보짓이라고 말이야. 윌리엄. 나도 동감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아. 이게 내 천성이거든.



 

아니나 다를까. 라킨과 멘도사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팀의 인류학자가, 자신이 실은 제시 휴즈가 아니라 잭슨 엘리어스이며 작가라고 밝힌 것이다(이런 반전을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이후에 이어진 이야기들은 더 믿기 어려웠다. 술 취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농인지, 진심인지를 분간하느라 제법 시간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죽음숭배 교단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방을 빨아먹는 흰 얼굴의 남자에 대한 이야기, 카리시리 전설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카리시리 전설이 이들 교단의 제물 의식과 관련될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었다. 전설이나 민담이 인간이 괴악한 현실을 설명하려고 떠들어댄 소리라 본다면, 얼핏 그럴듯하게도 들린다. 하지만 애초에 가짜 신분을 들이대고 참여한 사람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

 멘도사가 카리시리다? 설마.

 

 어차피 21일까지 일정이 여유로웠기 때문에, 내일은 모두 그와 함께 고고학 교수 네메시오 산체스를 만나 본격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날 밤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나는 묘한 풀 냄새가 나는 호텔 방에 누워 잠을 청했다.

 

 

 

 



1912. 3. 19

 

 산 마르코스 국립 대학 고고학 및 인류학 박물관.

 대화를 길게 나누지는 못했지만 산체스 교수는 양식 있는 인물로 보인다. 그의 영어는 능숙하고, 연구에 대한 태도는 진중하다. 나는 탐험대의 일원인 그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최소한 지금 나와 동행한 애송이 고고학 박사의 모습보다는 자연스럽다(그의 천재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현장에서는 경험 있는 사람을 더 믿는다).

 하지만 어거스터스 라킨은 산체스 교수의 탐사대 지원을 일방적으로 무시해왔다고 한다. 어째서? 산체스 교수는 팀을 외지인으로만 꾸린 라킨을 수상쩍다고 여기며, 도굴꾼으로 의심하고 있다. 벌써부터 책임자를 흰눈 뜨고 보고 싶지는 않지만, 합리적인 주장이다.



 

(이 뒤는 온통 휘갈겨 쓴 글씨로 적혀 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부정하고 싶어도 믿을 수밖에 없다.

나와 노라 양, 제이덕 박사 셋이 자료를 가지러 가서 돌아오지 않는 조교 리소를 찾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미라가 된 그의 시체를 발견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지방을 빼앗긴 시체(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그의 옆에 있던 거대한 황금 판에는 타버린 살점이 붙어있다(사진).

 처음 시체를 발견했을 때, 나는 숨이 막히고 방이 조여오는 듯한 감각에 거의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현장의 사진은 평정을 찾은 뒤 돌아가서 찍은 것이다. 카리시리. 카리시리가 있어! 그런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고작해야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지방이 말라붙은 시체를 보고서.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사람을 부르러 올라간 복도에는 칼을 맞은 이가 쓰러져 있었다. 소리를 듣고 사무실에서 나온 잭슨이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어째서인지 뱀의 혀가 목 뒤를 핥는 것 같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아닌데. 이건 아냐. 불길한 직감에 다급히 사무실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산체스 교수는 고통에 젖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교수는 거의 숨을 쉬지 못하고 헐떡이면서도, 자신이 누군가의 키스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비틀린 농담이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의 입 주위에는 정말로 허여멀건 뭔가가 말라붙어 있었다. 다급히 조처한 끝에, 그는 입에서 하얀 액체 덩어리 같은 것을 뱉고 쓰러졌다. 그 액체 덩어리가 마치 살아있는 존재인 양 내 쪽으로 달려오던 모습은, 제기랄, 맹세컨대 착각이 아니었다. 동행한 잭슨이 아니었더라면 나도 위험했을 것이다.

 산체스 교수는 그대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상황이 안정되자 모두가 머리를 맡대었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일까? 우리는 그 존재가 무슨 이유 때문이건간에, 시체 옆의 뜯어진 황금 판을 노렸으리라고 결론을 내렸다.

제이덕 박사는 이 판에 쓰인 글자를 살면서 한 번도 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것은 지금껏 발견된 어떤 고고학적 기록과도 일치하지 않고 유사하지도 않다고 한다. 인간 문명사와는 동떨어진 문맥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은, 어떤 멸실의 문명.

 

현실을 유지하고자 하는 감각이 부닥친 모든 사실을 정면으로 부정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명백히 보이는 진실을 외면하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애초에 기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머리가 너무 좋은 사람이다. 나는, 이제와서는 시간 낭비에 불과한 신랄한 태도를 빠르게 내다버렸다.

 

 

 

 

연구자 트리니다드 리소가 평안 속에 잠들길.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번역물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쓰여있었다. 

 



 1541년. 스페인 정복자들. 사원. 죽은 사람. 저주. 황금 판. 역겨운 구토. 에리식톤과 같은 영원한 굶주림. 그런 저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 안의 무언가를 파괴한다. 곱씹을수록 모래 위에 쌓인 성에 금이 가고야 마는 기분이다. 그러나 거기에 유난 떨며 애도하기에는 현실이 지나치게 끔찍하고, 나도 지쳤다. 지금은 내가 지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로 한다. 

 루이스 데 멘도사가 진짜 카리시리라면, 다른 무엇보다 멘도사의 학대 아래에 있을 라킨 씨가 걱정되었다. 그의 핏물 빠진 시체마냥 창백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얼마나 알고 또 얼마나 이용당하고 있는 것일까? 본인만이 대답할 수 있는 물음이었다. 우리는 그를 구하기 위하여, 에스파냐 호텔에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역시 에스파냐 호텔에 남은 방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걱정이 컸지만, 힘을 합쳐 무사히 라킨 씨를 구해왔다. 그가 헤로인에 찌들어 있어 황급히 산체스 교수가 입원한 같은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살아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검은 피가 흐르는 정맥, 곱아드는 나선의 기이한 문신과 먼듯 가까운 곳에서 풍기는 썩은 내.

 그것들의 의미를 곱씹기 전에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집중하고자 한다.

어차피. 살아있는 사람은 무슨 이유가 있든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내버려 둘 수도 없었던 것이다. 모두가 찬찬히 설득하자 라킨 씨도 경계를 풀고, 결국에는 눈물을 보였다. 의뭉스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를 동정한다. 아무래도 그의 기억은 부분적이거나 흐려지는 일이 잦은 듯하다. 아마도 멘도사의 영향이겠지.

 

 제이덕 박사는 피라미드에 이 황금 판을 되돌려놓을 생각이다. 우리는 멘도사를 따돌리고자, 내일 아침 곧장 푸노를 향해 출발하기로 했다.



 

 

 

 

 1921. 3. 23

 

 푸노에 도착했다. 그간 특별히 일기를 적을 만한 사건은 없었다. 고원 지대로 향하면서 날이 추워져 모두가 판초를 둘렀다는 것 정도.

 동료 탐사대와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제이덕 박사와 노라 양은 좋은 사람이고, 잭슨 씨에게는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인다. 각자에게 귀찮은 면이 있지만. 이 정도 척박한 환경에서 남과 지냈는데 그리 지치지 않았다는 것만 해도 선방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라킨 씨는 계속 아프다. 서둘러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여기서부터는 트럭이 가지 못하는 길이라 노새와 짐승들을 빌렸다.

 알파카의 형태가 어린 사람들에게 어필하는가? (왜 이렇게들 좋아하는 건지.)






새벽.

잠들지 못하니 뭐라도 적는다.

 

우리는 간밤에 산속에서 야영했다. 불침번을 서던 나는, 멘도사가 노새 한 마리를 뜯어먹고 노라 양을 공격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입이 마치 악몽에 나오는 괴물처럼 비틀리고 촘촘한 이빨로 빼곡한 것도 보았다. 그는 인간이 아니다. 카리시리다. 대체 카리시리가 뭔데? 이 세상이 신의 창조물이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물리적 균형과 과학적 법칙의 결과물 또한 아니라면? 우리가 죽여서 불태워버린 것이 사람 형태의 괴물인지 세상에 대한 얄팍한 믿음인지? 혹은 둘 다인지. 우리는 그 재를 땅에 묻었다.

 

 멘도사는 거울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뒷편에는 가면의 형태가 새겨져 있는 황금 거울 유물이었다.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이 내게 기묘한 환상을 보여주었다. 나는 수천 갈래 터널 속을 나아갔다. 뜨거운 바위, 체온이 느껴지는 바위를 보았다. 그 옆으로는 구덩이가 파여있었다. 짐승의 울음소리, 울음소리, 울음소리를 들었다. 울음소리를 들었다. 울부짖음, 을 들었다. 울음소리를 들었다.

 

 블레즈 파스칼은 “삶은 덜 불안정한 꿈일 뿐이다.”라고 적었다. “우리가 매일 밤 똑같은 꿈을 꾸게 된다면 우리는 그 꿈을 일상의 모든 것처럼 똑같이 여기게 될 것”이고 다만 그렇지 않은 이유는 “현실에서는 삶의 연속성이 끊어지지 않지만 꿈속에서는 그렇게 지속적이고 한결같지 않기 때문”일 뿐이라고.

 그 말을 빌어 적는다. 내가 지속되는 환상 속에서 바위의 뜨거움을 느끼고 인간의 형상을 한 그러나 인간과는 수억광년 멀어진 그 무엇이 인간의 기름을 빨아먹는 것을 보고 수천갈래로 끔찍하게 찢어지는 비명이 고막을 쟁쟁하게 울리는 것을 듣는데 그것이 내게 어떤 연속성을 가진다면 이것은 별반 나의 현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환상은 그저 환상일 뿐이라고, 꿈은 그저 꿈일 뿐이라고, 결코 온전히 믿지 못한다. 며칠 전까지 한낱 유물론자였던 사람으로서 이 명제가 어느 정도는 참일 수도 있다는 점이 나를 절망케 한다.

 숨이 찼다. 절망에서 기어 나오기 위해 나는 걷기로 했다.





 

 1921. 3. 24

 

 우리는 거의 잠들지 못한 채, 멀리서 해가 밝아오는 대로 출발했다. 현지인 농부의 아들이 칼리시리들에게 습격당해 다친 것을 도와주었다. 농부는 몹시 예민해져 있어서 우리를 거의 쏠 뻔했다. 예상대로, 칼리시리 몇이 더 있는 모양이었다. 가엾은 소년은 무참하게 피를 흘리고 있었다.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상처를 동여매고 지혈하자 호흡이 조금은 편해졌다.

인간이 인간을 돕는 것은 본성이다. 십여 년의 관찰이 있었지만 이 믿음은 변함없다.

 우리는 피라미드 근처로 다가가지 말라는 농부의 만류를 뒤로하고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단지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후 본 것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고 싶지 않다.

  -푸노의 계곡

  -풀을 눕히며 기어가는 두 사람. 아냐. 사람이 아닐 것이다. 스페인 정복자 남성과 현지 여인의 차림이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번갈아 구토하는 칼리시리들의 기묘한 행위.

  -파리들. 빌어먹을 파리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고산지대의 풍광은 춥고 무심하다. 제 안에 무슨 독을 품고 있는 지 모르고 관심도 없는 듯하다. 우리는 계곡에 난 위험한 길을 갔다. 돌담이 피라미드 주변에 둘려 있고, 입구에는 고인돌 형태의 석문이 서 있었다. 지나간 시간에 닳았으나 여전히 끔찍한 모습의 부조가 돌담 사이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피라미드의 상당 부분은 쌓인 흙이 만든 세월의 바다에 잠기고, 다만 5층 정도만이 드러나있었다. 앞서간 칼리시리들의 모습을 보았기에 모두 끔찍하게 지치고 긴장한 상태였다.

 조심스럽게 피라미드의 주변을 뒤진 우리는 시체가 잔뜩 쌓여있는 구멍을 발견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어보였다. 폐소공포증이 있다는 라킨 씨와 죄 없는 동물들을 밖에 두기로 하고, 모두 그 무저갱 같은 어둠 아래로 내려갔다. 닷새 굶은 사람도 식욕을 잃을 만한 부취가 진동했고, 들러붙는 살찐 파리떼 때문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 노라 양이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제이덕 박사를 과보호하려 들었다. 물론 그럴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구덩이 한가운데서 한시도 멈춰있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파리와 바싹 마른 나무토막 같은 시체들 사이를 지나쳐, 좁은 틈을 비집고 토기를 참으며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윌리엄. 나는 이날 지옥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게 되었어. 내 오만이 나를 거기로 이끌었어.

나는 내가 본 것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을 거야. 그런 걸 사람으로 태어난 예의라고 불러도 되겠지.



 유적에는 파리가 많았다. 지나치게 많았다. 게다가 평범하게 서서 지나가기에는 너무 좁았다. 목과 허리가 뻐근했지만 긴장 때문에 당시에는 제대로 깨닫지도 못했다. 갈림길의 한쪽에는 방이 있었다. 제이덕 박사가 해석하기로는, '충신의 방'이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잠든 칼리시리들을 보았다. 그들은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사람 같았다. 한쪽 벽에는 그들이 모은 것으로 보이는 재물이 쌓여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사람의 형상을 한 그들을 해코지 하는 데에 기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파리들도 우스운지 주변에서 윙윙 비웃어댔다. 그 잠이 깊어서 우리를 알아채지 못했기에, 결국은 조용히 문을 닫고 지나쳤다.

 중간에 시체 속에 깃든 흰 벌레에 습격당하는 사건이 있기는 했어도, 우리는 결국 황금 판이 뜯어진 곳을 찾아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뜯어진 구멍에서부터 하얀 액체가 새어 나와 그 밑으로 웅덩이를 만든 것이다. 웅덩이가 3m 정도의 넓이였기 때문에 당장 판을 제자리에 돌려놓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 중 누구도 그 웅덩이로 직접 걸어 들어갈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곳을 건너갈 간이 다리를 만들기 위해 노새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어거스터스 라킨이 아니었다.

 

 

 

 

 

 라킨의 몸에 깃든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목소리와 (이 뒤의 묘사는 검게 칠해져 있다)

 나는 알아. 악마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 악마는 단지 사람의 창조물일 뿐이니까.

 그러나 사람이 악마, 마귀, 악귀, 이런 단어를 써서 어떻게든 설명하고자 했던, 설명하고 이름 붙임으로써 약하게 만들고 또 잊으려고 했던 어떤 존재,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를 편안한 밤으로부터 영원히 추방한다. 내가 쏜 총알은 고작해야 어거스터스 라킨의 죽은 머리를 부쉈을 뿐이다. 그 안에 있었던 것은 일말의 생채기도 입지 않았다. 그냥 떠났다. 나는 안다.

 

 

 어거스터스 라킨, 그가 제 몸을 괴롭히던 지옥에서 벗어났기를 바란다. 나는 그의 시체를 묻어주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최대 4센치 정도 직경의 틈이 벌어져 있었다. 안에서는 지독한 썩은내가 났고 파리들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 ■■ ■■■ ■■ ■■■■■ ■■■ ■■■. ■■■■ ■■■■. ■, ■ ■■■■ ■■■■. ■■ ■■■■■ ■■■ ■■■ ■■.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경치는 거짓말처럼 평화로웠다.

 

 우리는 황금 판을 제자리에 돌려두었다.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두 칼리시리는 비명을 지르며 재가 되었고, 제이덕 박사와 잭슨 박사가 그들의 재물을 조금씩 챙겼다.

이후로는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거지꼴을 하고선 리마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제대로 된 기억조차 없다.

 

 



 

 

1921. 4. 4

 

 나는 진실 그 자체를 바꾸지 못하는 한 개인일 뿐이다.

 그러나 진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또 취할 것인가? 이것만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다니며 현기증처럼 나를 쫓아온다. 나를 한없이 무력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더없이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기록에서조차 거짓말을 했다.

 한때는 사람의, 사람을 위한 밝고 명징한 기호와 세상을 믿었다. 살아온 세월이 그리 길지는 않아도 언제나 그런 것들을 위해 발을 내딛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어떤 것은 어둠 속에 영원히 묻어 두어야만 한다. 결정은 횃불을 들고 멀리 나온 사람의 몫이다. 내가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단지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참아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제는 피라미드에서 빈손으로 나오다 못해, 그 깊은 곳에 어느 정도 나를 묻고 온 기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에 없이 인간적인 기분이기도 하다.

 내 명예욕이 아닌 인간성이 나를 죽이리라고 생각한다.

 혹시 그렇게 된다면, 부탁드리건대 이 기록은 불태워주시기 바랍니다.





 

 일라이저 웨버.












1925. 1. 3

 

 

잭슨으로부터 전보가 도착했다.

4년간 묻어두었던 기록을 다시 꺼내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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