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 니알라토텝의 가면들 캠페인 탐사자 시점으로 캠페인 내용을 기록한 글입니다.

저의 기록용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스포일러입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냐루가면 플레이 중인데 마스터가 아니라면?!?! 

아직,,,, 엔딩을 안 봤다면?!?! 

미국편 후기부터는 탁별로 정보량이 다르니 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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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1. 6

 

 


 무슨 이유일까? 갑작스러운 폭설과 함께 전보가 실려 왔을 때, 진작 압살한 줄로만 알았던 내 안의 해묵은 감정들이 고개를 들었다. 버석거리는 전보 종이에 닿는 손끝에 페루 고원의 바람이 스치는 듯했다. 반가움. 걱정. 두려움. 불안감, 약간의 흥분감. 한꺼번에 몰려와 가벼운 멀미를 일으켰다.

 나는 약속 날짜보다 훨씬 앞서 제이덕의 집으로 출발했다. 혹시나 해서 미리 정리한 자료들과 함께였다. 며칠 밤을 새우고 그대로 기차에 올라 덕분에 추위에도 불구하고 내내 잘 수 있었다.

 

 

 칼라일 탐사대의 기록 정리


 제이덕의 결혼식에서 본 뒤 처음이었던가. 노라는 여전히 씩씩했고 걷는 폼이 컸다. 쩌렁쩌렁한 웃음소리도 여상했다. 그리고 에디 부부. 볼이 포동포동한 여자아이의 이름은 소피아라고 한다. 학자가 제 딸에게 붙일 만한 이름이다. 그 안온한 가정의 온기, 피어오르는 식사의 김, 신중하게 고른듯한 길이의 사라사 커튼. 돌보는 손을 타 빳빳하게 다듬어진 소매와 악수하고 따뜻한 모닥불 앞에 앉자, 기묘한 흥분이 차차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모두가 저 바깥의 차가운 세계를 구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내 아끼는 친구들에게, 이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날 거냐고 물었다. 죽으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저번의 여행이 우리에게 던져줬던 날것의 위험을 생각하면 물어야만 하는 질문이었다. 그런 책임감 같은 것을 느꼈다. 잭슨 엘리어스가 우리를 안전한 여행에 초대했을 리는 없다.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망설였다. 알고 있지만, 자기 눈으로 봐야만 하는 것이 생겼다고. 봐야만 하고, 알아야만 하고, 그래서 떠나야만 한다고. 그런 대답을 들었다.

 남은 날들 내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들이 금방에라도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렇게 풋내기 같았는데. 고작해야 4년이었는데. 우리에게 이 4년이 얼마나 길었는지! 또 짧은지. 갑작스러운 손님이 에디 부인에게는 실례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 죄책감은 짊어질 수 있다.

 

 

 

 

 


1925. 1. 14

 

 뉴욕행 열차를 탔다. 유독 잔인한 겨울이었다.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운 추위와 무거운 폭설. 눈발이 온 세상을 덮어버렸다. 거대한 침묵이 세상을 감쌌다. 뒷좌석의 노인이 내내 기침을 해댔다. 석간신문을 주워다 읽는데 빳빳하게 얼어 잘 넘겨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들리는 뉴욕은 여전히 숨 막히도록 붐비는 도시였다. 나는 동료 기자인 스티븐스의 아파트로 갔다. (그도 아컴에 있는 내 아파트의 위치를 알고 있다. 자주 자리를 비우곤 하는 기자들이 흔히 하는 아파트 셰어였다.) 1월이면 그는 아마 파리쯤 가있을 것이다. 두 사람 정도는 더 묵을 수 있을 것 같아 제이덕과 노라도 불렀지만, 제이덕이 적응하기에는 너무 좁은 방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두 사람은 따로 호텔로 보내고 첫날 밤을 지냈다.

 꿈도 없이 긴 밤이었다. 아파트에서는 묵은 먼지 냄새가 났다. 생활감이라고는 없는 집이었다. 아무리 담뱃재를 털고 시트를 구겨도 내가 여기 있다는 흔적을 남기기가 어려웠다. 뉴욕에 왔다. 모든 것이 지독하게 희미했다.







1925. 1. 15

 

 제이덕이 잭슨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오후 8시에 첼시 호텔 410호에서. 잭슨은 묘하게 다급했고 전화를 빨리 끊었다. 우리는 약속 시각보다 조금 일찍 만나, 후추를 많이 뿌린 저녁 식사를 했다.

 제시간에 호텔에 도착했는데 아무리 노크를 하고 불러도 410호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귀를 기울여보니 안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불길했다. 긴장 때문에 입안이 말라 까끌까끌해졌다. 우리는 결국 힘으로 호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리고. 뭘 봤더라.



 

 아니. 그래. 난장판이 된 호텔 객실. 그 가운데 잭슨 엘리어스의 시체가 배가 갈린 채 누워있었다. 인영 셋이 비상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그들이 덮어쓴 가면으로부터 붉은 플란넬 천이 삐져나와 흔들렸다. 뒤를 쫓아가려 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제이덕이 겨우 난간을 붙잡고 선 나를 넘어서 뛰어 내려갔다.

 나는 겨우 숨을 고르고 다시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리고. 지금. 이 짧은 순간. 목격자의 극단적인 행동이 용서되는 아주 찰나 패닉과 방황의 순간에. 뭘 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침착해. 침착해. 침착해.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릴 때마다 되뇌었다. 머리가 아주 뜨겁다가도 차갑게 식었다. 결코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었다. 자연사도 병사도 사고사도 아닌. 살인 사건. 나의 친구는 살해당했다. 아주 불쾌하고, 아주 개성적인 방식으로. 난잡한 의식의 제물이라도 되는 양, 조악한 예술가의 퍼포먼스라도 되는 양. 그 모든 풍경이 지독한 농담 같았다. 바로 곁에서 노라 애버트가 오열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더라면, 그 울음소리가 그렇게 선명하게 실감을 때려 박지 않았더라면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악몽에 한 장면을 더하는구나. 우리는 친구였는데. 아아. 친구일 것이다.

 나는 침착하게 잭슨의 품을 뒤졌다. 손에 피가 묻지 않도록 조심했다. 거기서 명함 한 장과 성냥갑 하나를 찾았다. 나는 그런 짓을 하면서 손 한 번 떨지 않았다. 그리고서는 그 얼굴, 공포에 질린 얼굴, 이마에 남은 문양을 몇 장 사진으로 남겼다. 그의 뜨인 눈과 함께. 그 정도는 용서하겠지.

 어리석게도 그의 눈을 감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동시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에 자신이 보고 싶어 하던 것을 봤을까? 한 미치광이 의사의 기고문에서 망막광상이라는 개념에 대한 기묘한 주장을 읽은 적이 있었다. 개요는, 우리가 죽기 전에 본 마지막 풍경이 신경의 마술 같은 작용으로 망막에 사진처럼 뚜렷하게 새겨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연구하면 우리는 수많은 미제사건의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럴 때는 그런 황당무계한 소리도 사실이었더라면 싶다. 암실에서 그 눈을 인화하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멍청하기는. 안다. 멍청한 짓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어둠 속이 아니면 맘 편히 울 수도 없다.


 제이덕은 최선을 다했으나 범인들을 놓쳤다. 곧 경찰이 와서 현장을 조사하고 우리의 증언을 받아 갔다.

 마틴 풀 경위는 이런 살인사건이 벌써 9명째이고, 전부 이마에 이런 끔찍하고도 기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노라고 했다. 작년 할렘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 이야기였다. 그런데, 해당 사건에서는, 힐튼 애덤스가 벌써 범인으로 잡혀 교도소에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범인이 이미 잡혀 있다면, 나의 살인자는 누구란 말인가?






1925. 1. 16

 

 

 

 결국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꿈이 두려웠다. 나는 내가 잭슨의 품에서 발견한 것들을 보여줬다. 우리는 밤이 지도록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지. 칼라일 탐사대와 이 사건이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아, 죽음이 얼마나 부당한지.

 내일 사이프러스 힐스 묘지에서 비종파 장례식이 열릴 예정이다. 내리 주저앉아 있다가는 슬픔이 너무 많은 것을 좀먹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밖으로 나왔고 세 명의 사람을 만났다.


 성냥갑에는 상하이의 주소가, 명함에는 뉴욕의 회사가 적혀있었다. 당장 상하이로 날아가 볼 수도 없는 일이니, 일단은 명함의 단서를 쫓았다.


 -애머슨 무역: 사장인 아서 애머슨은 그는 고작해야 1~2주 전에 잭슨을 만난 듯하다. 애머슨 무역은 주주하우스에 아프리카로부터 가져온 물품을 납품하고 있었다. 그는 주주 하우스의 기분 나쁜 노인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주주하우스: 우리는 곧장 할렘으로 향해 주주하우스의 사일러스 은콰네를 만났다. 노라는 눈에 띄게 그를 의심했다. 분명 무언가 숨기고 있고, 눈빛이 음험하고,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저 송장에 가까운 노인이었지만 역시 감이 좋지는 않다. 목에는 뭔가의 열쇠가 걸려 있었다. 그는 유의미한 정보라고는 하나도 주지 않았다. 모든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었다. 잭슨은 왜 이런 명함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뒤이어 프로스페로 하우스 출판사의 조나 켄싱턴을 만나러 갔다. 만날 때마다 둥글어지는 남자다. 우리는 애도의 말을 몇 마디 나누었다. 그는 잭슨이 남긴 편지와 자료들을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그중에는 잭슨을 걱정해야 할 만큼 정신이 불안정해 보이는 편지도 한 장 있었다(물론 쉽게 내놓지는 않았다). 이 편지 한 장을 읽기 위해, 그리고 이 자료들을 가지고 가기 위해, 나는 간만에 각서를 썼다.

 조나, 내가 왜 내 친구의 명예를 팔아 싸구려 기사를 쓸 거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기자로 산다는 건 이런 모욕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일라이저 웨버. 하하. 불평하기 어려울 만치 값싼 서명이었다.

 

 

 

 

잭슨 엘리어스의 메모 







1925. 1. 17


 장례식 당일. 우리 셋과 조나 외에는 고작 두 사람이 더 있을 뿐이었다. 엘리어스의 변호사인 칼튼 램지와 그 조카 윌라 슬라이. 흐린 하늘에서 눈발이 조금씩 날렸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 때문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상실은 억지로 찾아왔으니 대비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작별은 자발적으로 고하는 인사였다. 그래서 더 쉽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은 전부 했다. 인사하며 보낼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위험을 미들네임으로 삼고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던 떠돌이가 그래도 돌아와, 결국 미국 땅에서 죽어 묻히는 것이. 이런 게 섭리라면 섭리고 자비라면 자비일 것이다.

 손수건을 넉넉히 챙겨왔는데 노라가 다 썼다. 다정한 엘레노라. 제이덕은 사내다운 척 누구보다 소년 같은 고집을 피웠다. 칼튼 램지 씨가 월요일에 엘리어스의 유언장을 발표할 예정이니 그 자리에 참석해달라고 전했다.


 돌아가는 길에 기자 몇 명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몇은 아는 얼굴들이었다. 개중 뉴욕 타임즈의 기자 레베카 쇼젠버그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쇼젠버그는 잭슨의 죽음과 힐튼 애덤스 사건 사이에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우리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고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레베카 쇼젠버그로부터 힐튼 사건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었는데, 요약하자면:

-모데카이 레밍 박사가 이 사건과 죽음숭배교단과의 연관성을 밝혔다. 

-할렘 사건은 제법 오래 연관성을 부정당하다가 14분서의 롭슨 경관에게 넘어갔다. 

-힐튼은 8번째 살인사건에서 현행범으로 잡혔다.


 쇼젠버그 기자가 힐튼 애덤스의 아내 밀리 애덤스 씨와의 만남을 주선해주기로 했다. 이후 우리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쉼 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이 슬픈 생각을 멈추는 데 도움이 되었다.

 



 뉴욕 시립 도서관에서 얻은 자료 정리.

  1. 칼라일 탐사대에 대하여

 -칼라일 가문: 시조 에브너 베인 카렐이 “불건전하고 흉악한 행동”으로 영국에서 버지니아로 이송되었다. 그의 아들 애프라임이 뉴잉글랜드로 가서 성을 바꾸었다. 이후 남북전쟁 시기에 사업에 성공하여 부호 가문이 되었다. 현재는 에리카 칼라일이 운영하고 있다.

 로저 베인 워딩턴 칼라일은 17세 때 친자 확인 소송을 면했다. 18, 20세 때 각각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았다. 고등학교는 명문 사립을 나왔는데 이후에는 온갖 명문대에서 신사적 자퇴를 했다. 부모는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였다.

 -마스터스 가문: 군수 기업 경영. 안전한 투자.

 -존 브레이디: 폭행, 도박에서부터 무죄 선고된 살인 혐의 등 전과가 다양하다. 그는 사건을 목격한 8명의 증언을 누르고 명백한 사건에서 무죄를 받았다. 칼라일이 뒷배를 봐줬나 본데.

 -로버트 허스턴: 존스홉킨스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프로이트, 융에게 배웠다. 염문이 있는 사람이었고 부자들을 주로 진료했다. 그의 환자 중에 로저 칼라일도 있었다. 사망 선고 이후 진료기록이 전부 뉴욕주 의료관리위원회로 넘어갔다. 


  1. 잭슨의 죽음에 대하여

 기호학: 피해자들의 이마에 있는 문양. 왕조 시대 이집트에서 쫓겨난 한 종파로부터 이어진 사교조직의 문양이라고 한다. 피투성이 혀 교단과 연관이 되어 있고 뿌리는 케냐. 지금도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결국 노라와 제이덕 두 사람 모두 호텔을 떠나 아파트로 짐을 옮겼다. 이제야 슬슬 이 낡은 공간에 누군가가 머문 흔적이 보인다.

 






1925. 1. 18

 

 다들 웬일로 아침부터 부산스럽더라니 일요일이다. 신실한 신자들이로군. 나는 신성한 문턱을 넘는 대신 아침 시간을 달콤한 잠과 불경한 사건들에 대한 문서 정리로 때우기로 했다. 노라는 내가 교회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믿기지는 않겠지만 나는 가톨릭 신자고 내 이름은 세례명이고 내 형은 신부라고 대답해주었다(반쯤은 사실이다). 노라는 그러면 성당이라도 가던지, 아니 교회에 가야 한다고 대꾸했다(이럴 수가). 나는 슬프고 위험한 시기에 기도하면 손해를 보는 묘한 징크스가 있다고 덧붙여 설명했지만, 노라는 대략 '헛소리 하지 마세요'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이런. 하지만 어린 동료에게 내 인생을 그 이상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진 않다. 신과 나의 복잡스럽고 서로 불편하고 그렇다고 사랑이 없지도 않은 지난한 관계가 대체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래서, 하나님의 예언자 엘리야는 동료들이 자리를 비운 동안 슬픈 타성에 젖어 벽에 지도를 붙이고 칼라일 탐사대의 행적을 정리했다. 꽤 품이 드는 일이어서 반나절이 종일 걸렸다. 붙이고, 쓰고, 붉은 실을 잇고, 바쁘게 손과 머리를 움직이니 두 사람의 공백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노라가 돌아오는 길에 샌드위치를 사다 줬다. 소스의 맛이 기름지고 부도덕했다. 냉담자에게 차려진 즐거운 식사였다.



 오후. 레베카 쇼젠버그와의 약속. 힐튼 애덤스의 아내인 밀리 애덤스와의 만남. 장소는 할렘 가에 위치한 라파예트 극장. 그곳이 밀리 애덤스의 일터인 듯 했다. 밀리 애덤스 씨는 인상이 강렬하게 남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렘 헬파이터 출신의 힐튼 애덤스는 경찰이 사건에 관심을 두기도 전에 친구들과 함께 자율 방범대 비슷한 활동을 해온 듯하다. 이미 2년 전부터, 할렘에서는 끔찍한 살인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었다. 피해자들의 신분은 다양했고 이마에 새겨진 문양, 그리고 모두 할렘에 다녀왔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었다. 경찰은 범죄 조직의 항쟁과 강도 사건으로 추정했지만, 애덤스 부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힐튼은 뉴욕시립도서관에서 이 사건과 특정한 교단이 연관되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또 다양한 일지와 기록을 남겼는데, 이 자료는 이후 경찰이 전부 압수해 갔다. 힐튼은 붉은 색의 긴 천 조각 같은 걸 이 자료의 책갈피로 쓰고 있었다. 붉은 천이라.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힐튼은 체포되기 얼마 전에 친구들과 함께 주주하우스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래서, 밀리는 할렘의 주주하우스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 남편이 체포된 이후 직접 감시를 하기도 했다. 밀리가 본 것은:

 -한 달에 한 번씩 대략 2~30명 정도가 새벽에 한꺼번에 가게로 들어가는 모습. 

 -한번은 사람들이 오기 1시간 전에 비밀스러운 짐 상자가 가게로 들어갔다. 

 -낮에 형사들이 들어가는 것도. 뇌물을 받은 듯. 경찰도 한 패군.


 힐튼 애덤스는 작년 9월 뉴욕시립도서관 할렘 분관 근처, 으슥한 골목 중년 백인 남성의 시체 옆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목격자는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간 경찰 한 사람. 힐튼은 피 묻은 단도를 버리고 있었다고. 흉기는 힐튼이 군대에서 받았던 볼로 나이프라고 한다. 하지만 밀리에 의하면 그는 그 칼을 순찰 나가면서 한 번도 가져간 적이 없고, 집에 있었던 것을 경찰이 압수해갔다고 한다.


 고작해야 두 사람, 평범한 일상을 살던 부부가 겪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밀리 애덤스는 초연하고 담담해 보였다. 종합해보았을 때, 힐튼 애덤스에게 누명이 씌워진 정황은 분명했다. 경찰까지 이런 방식으로 사건에 연관이 되어 있다면, 믿을 사람이 대체 얼마나 있을까. 그 말인즉슨 내가 직접 찾아 나서지 않는 이상 잭슨을 해친 살인자가 경찰에 의해 명명백백히 밝혀질 일은 없을 것이란 뜻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의 누명을 밝히겠노라 다짐하고, 힐튼 애덤스와의 면회 약속을 잡았다.


 할렘을 벗어난 이후로는 내리 허탕이었다. 기록의 전당을 뒤졌지만 사일러스 은콰네는 시민으로 등록 되지 않았다. 에리카 칼라일의 법무법인이 던스턴 휘틀비 앤드 그레이라는 것 정도만 알아낼 수 있었고. 이후로 모데카이 레밍을 만났다. 정식 학위도 없는 박사에게 뭔가 많은 것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시간 낭비가 될 줄은 몰랐다. 이런 시간 많은 호구 새끼가 주주 하우스의 돈줄 중 하나라니.

 

 

 

 

 


1925. 1. 19

 

 아침 일찍 램지 사무소로 왔다. 자그마한 공간이었지만 모든 물건과 사람이 제자리에 들어차 있어 제법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었다. 우리는 잭슨 엘리어스의 유언장 집행에 참석했다.

 램지 씨는 먼저, 잭슨이 죽기 대략 3일쯤 전에 와서 맡기고 간 것들을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잭슨 엘리어스가 램지에게 남기고 간 것

 

 

 또, 잭슨은 죽기 전날 밤에 와서 자신의 유언장을 고치고 갔다고 했다.

그렇게 예감될만한 죽음이었다면, 아예 작정하고 우리를 목격자로 선별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잭슨 엘리어스의 유언장

 

 

 잭슨 엘리어스. 이 빌어먹을 자식. 살아있었더라면 거하게 한 대 갈겼을 거다. 살아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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