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9님의 coc 타이만 시나리오 불사의 마법사와 사랑하는 인형의 짧은 후기로그?글?소설? 매번 쓸 때마다 뭐라 적어야할지 모르겠는 그것입니다. 세션 내에서 털지 못한 얘기라던가 더 할 이야기만을 조금 채워서 빈 곳이 많습니다. 1대1시날의 후기글은 처음인데 커플덕질로그가 되는군요...

개변이 다방면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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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

 

마태복음 5장 3­12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윤동주

 

 

 1.

 

 목 끝까지 검은 물이 가득 찼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물 밖에 둔 금붕어처럼 뻐끔대다 보면 마른 입술이 찢어져 틈새로 피가 고였다. 검은 물은 점막을 타고 눈앞을 흐리고 시끄럽게 귓바퀴를 흘러 사람을 미치게 하고 끝없이 끝없이 갉작거렸다. 녹아버린 정신이 곤죽이 되어서 바닥을 기었다. 내가 너무 작아. 너무 작아서. 그걸 내려다보고 있으면 욱, 구토감이 올라왔다. 어떤 날은 귀가 멀기라도 한 것처럼 비명만 겨우 지를 수 있었고 어떤 날은, 검은 물을 뱉어내고 싶어서 억지로 목젖을 후벼댔다. 맑은 위액을 실컷 토해내고 나면 타들어가는 목구멍을 잡고 겨우겨우 잠들었다. 

 

 나 갈라졌어. 찢어졌어. 산산이 조각났어. 살점 덩어리가 칠칠맞게 덜렁거리고 머리카락이 한 뭉텅이씩 뽑혀나갔어. 이빨이 다 부서져서 입술 사이로 후드득 흘러내렸어. 죽음이 앉았다가 버리고 간 몸을 꿰맨 후에도 나는 다시 비틀거리며 죽음을 찾아헤맸다. 어두운 동굴을 벗어나기 전 잠깐 우두커니 앉았던 것이 휴식의 전부였다. 그것이 인생에 단 한 번 찾아오는 축복임을 모르고 그것에게 버려졌다. 너무 쉽게 천국도 지옥도 날려버렸다. 이걸 사는 거라고 부를 수 있다면.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고 찬란하지도 아름답지도 않고 그저 지겹고 끊임없이 이어지기만 하는 멈춰있는 것조차 못하는 지저분한, 추잡한, 역겨운, 더러운

 검은 물. 조각난다는 게 무슨 의미인 줄 알아? 네 몸을 조각내는 순간순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부서지는 것 같아. 해버리고도 끔찍해, 끔찍한데도 해버려. 하지만, 왜, 왜 네가 그런 얼굴인 건데? 내가 지금 얼마나 괴로운지 

 알기는 해? 안다면 돌아왔겠지. 예전처럼 그렇게 불러줬겠지. 그러니까 넌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바보. 멍청이. 쓰레기. 네가 불쌍해. 네가 가엾어. 아니, 아니. 네게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이럴 땐 내가 내가 아닌 것만 같아…. 어두워진 시야 가운데 숨 쉴 구멍이 떠오르면 배가 아프게 웃으며 뒤쫓았다. 세상이 여전하고 시간이 여전하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나면 두 배 무겁게 절망이 내려앉았다. 가끔은 분노에 사로잡혔고 어떤 때는 우울에 잡아먹혔다. 정신을 차리면 방은 엉망이었다. 부서졌다 고치고 부서트렸다 고치고 무너트리고 망치고 그리고 다시 세웠다 다시 무너지는 것들의 탑. 아수라장이 된 방 한 가운데에 서있는데 절박하게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서걱서걱 모래가 갈라지는 시야 사이로 네가 보였다. 그 눈을 들여다 본 게 얼마만인지 너무 낯설고 두렵고 역겹고 사랑스럽고 이상해서 깜빡이지도 못하고 쳐다봤다.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네가 말했다. 다시 시작해요. 다 지워버리는 겁니다. 당신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만이래도 좋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2.

 

 부서진 세상에도 봄이 왔다. 숲은 하나밖에 남지 않아서 이름도 없이 그냥 숲이었다. 살 자리를 찾아 날아온 꽃씨들 덕에 숲에는 온갖 꽃이 다 피었다. 흐드러지고 겹이 많은 분홍색 꽃, 가지 끝에서부터 둥글게 뭉쳐 떨어지는 두껍고 흰 꽃, 흙과 가까이 자라는 보랏빛의 손톱만한 꽃이며 노란색의 자잘하고 술 많은 송이까지 온갖 것들을 다 보고 지나가는 계절이었지만, 그는 그것들의 이름을 몰랐다. 책을 온통 뒤져봐도 없었다. 마법사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물어오는 목소리에 그늘진 눈길이라도 던져주는 날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겨울에는 알이 굵은 흰 눈이 펑펑 내려 바싹 메마른 이파리마저 전부 덮어버렸다. 그럴 때의 숲은 야속하리만큼 고요해졌다. 그런 계절에는 미쳐서 내지르던 비명도 다 묻혀버리기 마련이었다. 그런 고요함이 차라리 좋았다. 첫눈이 뿌듯이 쌓인 날이면 마법사는 뭘 하고 있었건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면 저 멀리서 혼자 눈을 뭉치고 있는 게 보였다. 고장난 마음에 평화를 주는 얼마 안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무얼 만드는지는 잘 알기 어려웠지만 돌아보고 환하게 웃어주는 상상 같은 것을 했다. 짧은 하루가 지나면, 또 평소 같은 날들이 찾아왔다.

 마법사는 지겹게 변덕을 부렸다. 어떤 날은 눈밭이 너무 눈부시다고, 어떤 날은 꽃밭에 색이 너무 많다고 화를 냈다. 하늘에 별이 존나 많아서 그래서 너무 싫어서 죽여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런 변덕에 맞춰 커튼을 치거나 하나 남은 눈을 가만 가려주는 게 그의 일과였다. 허락하면 뒤에서 마른 몸을 품에 댔다. 너무 괴로운 날엔 정말 심장이 멎은 사람 같이 움직이지도 않아서 그를 불안하게 했다. 일부러 불편하게 자세를 바꾸고 뒤척여도 미동 하나 없었다. 고통이 스민 일상이 단조롭게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갔다.

 

 

 3.

 

 아담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 어디에 무슨 죄가 있어서 인간은 그리도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까?

 

 

 4.

 

 고리 걸듯 가볍게 걸쳐 잡은 손이 간질했다. 그가 묻지도 않았는데 디터는 하고 싶은 얘기를 늘어놨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제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작고 보라색으로 우글우글한 것은 꽃잔디. 말하는 입이 즐거워 보였다. 아, 데이지. 교회 옆에 살던 노인이 이걸 앞마당 가득 키웠는데 한 송이라도 꺾어가면 화를 냈어. 잔뜩 쥐어박히고 울면서 돌아왔을 때는 그 사람이 너무 미웠지. 커서 알고 보니까 말이야, 전부 죽은 딸 거여서 그랬대. 죽기 전에 제일 좋아하는 꽃이었다는 거야. 내가 잘못한 거지. 이제는 꺾어가도 화낼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데이지가 계속 데이지여서 다행이야.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지났는데…… 감상은 더 이어지지 않고 입술이 다물어졌다. 뭐라 물어보기도 전에 변명 같은 말이 덧붙여졌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목이 아파.

 물론 거짓말인 걸 알고 있었다. 상상하지 못하는 시절, 공유하지 못하는 추억이 어느새 물씬 다가와 눈앞에서 또 일렁이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그런 때에 초조해하며 서있지 않았다. 다정한 몸짓으로 몸을 겹치면, 그는 멀어졌던 것이 거짓말 같이 쫓아와 포갠 손 위에 손을 얹고는 했다.

 

 예뻐서요.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예뻤다. 느리게 붉고 다정한 색으로 물들었다. 리온. 그렇게 마주 불렀다. 그 이름을 말할 때 혀가 움직이고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새가 퍽 마음에 들었다. 왜 너를 그와 같은 이름으로 불렀을까? 다른 사람이라는 걸 인정할 수가 없어서? 그게 네 영혼에 붙은 이름이어서? 잘 몰랐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잊히고 만 이유였다. 가끔 그 이름 때문에, 자기가 그 이름 너머의 다른 사람을 찾는지 정말로 너를 찾는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묵혀둬 좋을 것이 없는 혼란이기에. 이내 고개를 털어냈다. 귓가에 곱게 고인 꽃 한 송이 때문에 하루종일 걸음걸음마다 향기가 났다. 그것 때문에, 어차피 오래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얼굴을 돌려 마주 봤다. 그리고 아주 미약한 움직임으로 속삭였다. 네가 사랑스러워.

 

 햇살이 좋아. 조금 더 걷자. 걷다 보면 꽃향기도 바스러지고, 너도 조금쯤은 졸음에 고개를 기울일 테지만, 그래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숲을 거닐러 가겠지. 그러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슬픔 다음에 오기로 약속한 것에 다른 이름을 붙일 수도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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