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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예술품의 메세지 탐사자 엔조 리슐리외는 사고로 혼수상태인 쌍둥이 형 엔조의 이름과 신원을 훔쳐 유명 평론가 행세를 하는 캐릭터였습니다. 걸작을 완성하려 피나게 글을 썼지만 결국 영감의 씨앗이 터져 로스트했습니다. 이것은 깨어난 진짜 엔조 시점에서 쓴 뒷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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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조 리슐리외가 오랜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것은 189n년 n월 n일 아침이었다. 오래 굳어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이 낯설었다. 그가 눈을 뜬 것을 발견한 하녀가 급하게 물수건을 갖고 왔다. 그녀는 젖은 천 조각으로 익숙한 듯이 그의 얼굴과 몸을 닦았다. 내가 대체 얼마나 이런 상태였지? 엔조가 아직 저 너머에라도 있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거예요.

 엔조는 영락없이 휠체어 신세가 되었다. 아주 조금씩 움직이는 법을 다시 배워야했다. 의사는 모든 정황을 말해줄 테니 몇 년을 더 쉬라고 했다. 자신에게 일어났던 사고는 그저 남 일 같았다. 부서졌다가 맞춰진 신체만이 엔조에게 남아있는 숙제였다. 펜을 쥐려고 하니 손이 덜덜 떨려 당최 글씨가 만들어지질 않았다. 음. 엔조는 차분하게 잉크를 적신 펜 끝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다시 나를 조립하는 동안, 무얼 해야 할까.


 엔조는 자신의 뿌리들을 찾아내는 데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하나뿐인 혈육인 동생은 자신의 이름을 빌려 평론가 행세를 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실종되었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엔조는 동생의 행방보다 동생이 자신의 이름을 빌려 끼적인 글들을 먼저 찾았다. 몇 장 넘겨보니 절로 실소가 나왔다. 치열하게 엔조를 흉내 낸 글이었다. 편협한 취향이지만, 대체로 보는 눈은 있었다. 가끔은 돈을 받고 치졸한 기사도 써냈다. 그 애는 가장의 공백 동안 다행이도 굶어죽지는 않을 만큼 썼다.

 

 엔조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조사했다. 펠라당의 첫 전시회 직후까지 그 애는 증발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 동생을 기차역에서 목격했다는 증언을 얻었다. 그 곳에 일했던 사람들을 캐자 그림 하나를 옮기는 일을 했던 다르크 가의 하인을 만날 수 있었다. 하인은 그때 당시의 일을 꽤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집안의 주인은 실종되었으며 자택은 공화 정부의 관리 하로 들어갔다고 했다. 같은 날 동행했던 사람들 중 동생과 함께, 예술계를 주로 다루던 로맹지의 젊은 기자 하나도 실종되었다. 그의 글도 모조리 찾아서 읽어보았으나 그저 마음이 다른 데에 가 있는, 가십에 충실한 잡지라는 인상 뿐이었다. 정치범의 망명에 어떤 식으로든 엮이게 된 것이었을까? 그들의 행적을 쫓으면 쫓을수록, 괜한 상상력만 불거졌다.

 엔조는 되도록 피하려고 했던 수단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동생과 함께 열차에서 목격되었던 사람들 중 행방이 분명한 이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젊은 마드모아젤 클로에는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동생이 살아 돌아온 줄만 알고 조각칼을 떨어트렸다.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납득에는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조금 시간을 더 들인 후에야 엔조는 그녀에게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클로에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찾아간 두 번째의 사람도 같은 말을 했다. 파리 근교에서 살고 있던 무슈 브란트였다. 정돈되지 않은 수염에 앞치마에는 덕지덕지 물감이 묻어 있었다. 그들의 작품은 삐뚤어진 시선으로 먹고 살았던 엔조조차도 흠을 잡기 어렵게 완벽했다. 두 사람이 만들어낸 모든 창조물 하나하나가 신이 불공평하다는 명제의 경험적 증명 같았다. 이데아의 옷자락 끝을 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받았던 기묘한 시련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악몽과 불타는 집에 대해, 거기서 불꽃과 함께 사라진 것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 젊고 안타까운 것들 중에 자신의 동생이 안고 간 자신의 영광, 이름, 명예가 있었다. 동생은 그날 밤 손끝에 쥐가 나도록 자판을 두드리고 펜을 움직였다. 오른손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자 왼손으로 바꿔서 썼다. 그러나 그 그릇은 날 때부터 영감의 씨앗을 받아내기에는 너무 작았다. 관절이 녹도록 춤을 추고 색채의 산을 쌓아도 아폴론의 뮤즈들은 그저 그들에게 안 돼, 라고 속삭이고 웃었던 것이었다.

 재밌기 전에 약간은 괴로워지는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엔조는 살짝 질투가 났다. 나라면, 나라면 달랐을 텐데, 그런 귀중한 기회를 그런 범재가 얻게 되다니, 사랑을 앞질러 이런 생각들이 튀어나온 것은 아무래도 그 씨앗을 틔워낸 두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들을 미리 만나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아름다운 것을 악마적이라고 하는 데는 늘 그렇듯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한참을 더 브란트의 그림 앞에 서 있은 후에야 휠체어를 돌릴 수 있었다. 천재들이 입을 맞추어 비밀 의식을 하고는 거짓말을 하는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으나 이런 숭고함 앞에서 그것이 거짓이든 아니든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모든 일들을 듣고 정리한 엔조는 결국 책상 앞에 앉았다. 엔조는 자기도 모르게 펜촉을 씹어대며 생각했다. 그저 있었던 일을 쓰자. 동생은 감당하지 못한 영감을 받고 머리가 터져서 죽었다. 그 애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저 말을 조금 할 줄 알고 글 욕심이 있었지. 그 애는 허영덩어리였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혈육이었다. 엔조는 망설이다가 제목을 적어내려갔다.


1890년 프랑스 파리,

젊은 엔조 리슐리외의 실종에 대하여.

          -피에르 리슐리외 저(著)-






CoC 이름없는 공포들 시나리오집의 예술품의 메세지 짧은 후기..글..소설? 같은 것. 시나리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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